미국발 세계 금융위기 여진에 고용시장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구직자는 넘쳐나는데 일자리는 말라가고 있다. 대기업마저 사정이 여의치 않다 보니 일자리 구하기 전쟁은 상상을 초월한다. 정부에서 '일자리 나누기'를 적극적으로 추진한다지만 기업도 선뜻 일자리를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 IMF 이후 사상 최악이라는 경제 불황 시대, 얼어붙은 구직시장 현장을 둘러봤다.
◆실업급여 신청자 '사상 최고'
지난 24일 오후 3시 대구지방노동청 대구종합고용지원센터 5층 강당. 약 100명이 강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들은 실업급여를 신청하려는 실직자들. 취업지원팀 윤영탁 팀장이 "처음 실업급여를 받으러 오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으로, 내용은 실업급여 수령과 관련된 유의점에 대한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지난해 말까지 하루 1회 실시했지만, 실업급여 신청자가 늘면서 올해부터는 하루 2회 교육하고 있다. 제법 많은 사람이 모인 만큼 어수선할 법도 하지만 웃거나 떠드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수강생은 40대 중후반의 남성은 물론 50대 중장년, 20대 초중반의 남녀 등 성별과 연령대 구성이 다양했다. "인원 감축시 가장 먼저 대상이 되는 단순 기능직이나 사무 보조직 중심"이라는 윤 팀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는 "오늘 수강생들은 본인이 일을 더 하고 싶어도 단순직이라 해고된 경우"라며 "IMF 직후 은행 직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양복 입은 사람들이 많아지면 진짜 큰일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후 3시 20분. 교육이 끝나자 수강생들은 2층으로 내려갔다. 실업급여 수령 날짜와 관련서류를 받기 위해서. 고용지원센터 직원들이 신청자 이름을 불렀다. 신청자들은 자리에 앉거나 서서 이름이 불리길 기다렸다. 서류를 살펴보는 이도 있었고,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들은 각각 2~4주 동안 구직활동에 나서야 한다. 업체에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는 등 구직활동이 증명되면 실업급여를 받게 된다. 개인에 따라서 월 80만~120만원 정도가 된다. 최정민 취업지원1팀장은 "지난해 1월 대비 대구·경북에서만 실업급여 신청자가 4천명이나 더 늘었다. 금액 또한 333억원에서 368억원으로 증가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고용상황이 악화됐음을 알려주는 방증인 셈이다. 최 팀장은 "아무리 못해도 올 상반기까지는 계속 실업급여 대상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예상됐던 해고, "빨리 취직했으면…."
교육에 참가했던 권모(27·여)씨와 최모(28·여)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두 사람은 친구 사이로 지난 연말까지 3년간 채권추심 회사에서 일했다. 경기 악화로 인원 감축이 시작됐고 재계약이 안 돼 실직자가 됐다고 했다. 최씨는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실직하고 난 뒤 고용지원센터를 찾았다"고 했다. 다른 일자리를 찾아 봤지만 이들이 일할 만한 자리는 '거의' 없었다. 권씨는 "국비로 하는 직업교육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가능하면 재취업해서 하던 일을 계속 하고 싶다는 것이 두 사람의 생각. 그나마 결혼을 해서 부담이 적다는 두 사람은 "조금 휴식 시간을 갖는다고 생각하고 직업교육을 받아서라도 제대로 된 곳에 취직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날 고용지원센터 직원과 상담 중이던 김모(60)씨는 이미 교육을 받고 구직활동을 하고 있었다. 건설현장에서 형틀 목공일을 하는 김씨도 지난 12월 현장에 나간 뒤로 일자리가 끊겼다. 평생 한 가지 일만 하다 보니 다른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 그는 "40대나 50대 초반만 됐더라도 딴 일거리를 찾아봤을 것"이라고 했다. 건설경기가 위축된 마당에 일자리가 쉽게 나올 리가 없다. 그는 "(건설 현장일은) 겨울 지나 빨라야 3월은 돼야 자리가 생길 것이다. 한 3, 4개월 겨울방학 지낸다 생각하면서 일자리를 찾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두 아들이 출가해 한 시름 덜었다"면서도 "집에 있으면 아내가 자꾸 '일 안 나가느냐?'고 성화를 부리는 바람에 마음이 편치 않다"고 털어놨다.
◆구직난 악화일로 속에 일부 구인난도
"작년 말부터 실업급여 신청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전화 문의도 많고. 면접 행사가 있을 때에는 사무실이 시장 바닥 같다. 업무처리량이 늘면서 직원들도 많이 지쳐 있다." 고용지원센터 취업지원과의 한 직원에게 요즘 분위기를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취업전선은 급속하게 얼어붙어 있는 상태이다. 지난달 구직활동을 포기한 사람까지 포함하면 346만명이 '실질적인 백수'라는 분석도 있다. 고용형태가 불안정한 비정규직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지난달 조사 결과 임시·일용직 노동자 수는 695만명, 지난 2004년 8월 이후 4년 만에 700만명 아래도 떨어졌다. 해고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지난달 임시·일용직 일자리는 1년 전에 비해 26만7천개나 감소했다. 지난 2003년 10월 이후 5년여 만에 가장 큰 폭이었다. 대구경북 취업포털 갬콤 이은미 과장은 "2월 들어 감소폭이 줄고는 있지만 작년 10월부터 일자리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했다.
고용시장이 사상 최악을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여전히 사람이 없어 고전하는 중소기업도 있다. 구직자들의 눈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윤영탁 팀장은 "상황은 계속 악화되고 있지만 일자리는 분명히 있다. 업체가 제시하는 조건과 구직자 본인의 조건이 서로 맞지 않을 뿐"이라고 단언했다. 전문가들은 지난 1월 실업률이 3.6%(85만명)에 달했음에도 기업들의 인력부족률은 3.23%(25만명)로 오히려 높아지는 추세를 예로 들기도 한다. 지역 대학에서도 최근 ▷지원서류만 제출하면 합격을 보장한다며 10여개 중소기업이 원서를 전달했지만 여학생 2명만 지원했거나 ▷지역의 한 중견 기업이 20장의 추천서를 보냈지만 11명만 받아간 경우 ▷식품 제조·판매 관련 계열사를 4개나 거느린 기업 취업설명회에 50여명만 찾는 등의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다른 의견도 있다. 김기동 경북대 진로지원실장은 "중소기업이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하지만 실제로 친인척이 가득하거나 대기업과 하청관계에 있어 입사하더라도 절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를 고려하면 구직자들이 눈높이를 낮추더라도 갈 만한 곳이 많지 않다는 말이다. 그래서 중소기업 대표들도 기업할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김 실장의 주장이다. 윤 팀장도 "업체들도 구직자들이 (회사를) 잘 모른다고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근 IMF 직후보다 더한 최악의 경기 상황은 이런 고민 자체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제조업 중심인 지역 중소기업의 경우, 가동률이 떨어져 새로운 인력 수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성서관리공단 김종상 상담실장은 "공단 내 기업들이 노동부의 고용지원장려금 등으로 겨우 버티고 있는 수준이다. 구인이 거의 없기 때문에 구인난 자체가 있을 수가 없다"고 했다.
◆자기계발·경력쌓기 등 노력 필요
인력시장이 얼어붙었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어려운 상황에 맞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윤영탁 팀장은 "대학 졸업 후 미취업 상태로 2, 3년 지나면 기회가 점점 줄어든다. 특히 대구의 보수적 성향에서 신입사원이 나이가 많으면 기존 사원이 안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며 "가장 현실적인 선택을 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은미 과장도 "현실적으로 해법을 제시하기가 마땅하지 않다"며 "구직자는 '스펙'(specification:구직을 위해 필요한 학력·학점·토익 점수 따위를 합한 것)을 높이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상황이 어려운 만큼 나름대로 장점이 있는 인턴으로도 눈을 돌려 경력을 쌓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 과장은 덧붙여 "업체에서 인턴을 뽑거나 노동부 지원금을 받기 위한 서류 처리 작업이 너무 번거로워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며 "정부에서 이를 간소화하는 등의 노력을 더 기울일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