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값이 무한정 오르고 있다. 24일 고시환율 기준으로 하면 1천516원을 줘야 1달러를 손에 쥔다.
지난해 말만 해도 1달러값은 1천259.5원이었다. 불과 두달도 안 돼 1천500원대로 급등, 순식간에 20.4%나 올라갔다. 달러값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3월 13일 이후 10년 11개월 만에 최고치다.
엔화값도 마찬가지다. 100엔을 가지려면 지난해 연말 1천395.72원이면 됐는데 24일엔 1천590.91원으로 14% 상승했다.
외화와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세계화시대. 가계·기업 모두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달러값·엔화값 탓에 비명을 질러대고 있다.
◆유학생 부모들의 한숨
미국에 아들을 유학 보낸 대구의 한 상장기업 임원 K(54)씨. 그는 이달 달러당 1천500원을 주고 송금을 하면서 '이러다가는 내 허리가 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달 1천600달러를 보냈는데 우리돈으로 환산하면 240만원.
그는 돈을 보낸 뒤 송금 기록부를 쳐다보면서 혀를 찼다. 지난해 1월엔 1천850달러를 보냈는데도 통장에서 빠져나간 돈은 177만원(당시 원/달러 환율은 951원)에 머물렀었다. 이달엔 250달러나 적게 보냈는데도 당시보다 돈이 63만원이나 더 나간 것이다.
"2007년 아들을 유학 보냈는데 지금같이 괴로운 때는 없었다. 1년 전 900원대이던 환율이 1천500원으로 뛰었는데 깜짝 놀라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나? 5월엔 대학 등록금을 내야 하는데 몇만달러를 보내려니 앞이 캄캄하다. 할 수 없이 아들에게 통보했다. 2만~3만달러면 되는 주립대학에 가야한다고. 지금 상황으로는 5만~6만달러나 하는 사립대학 등록금은 엄두를 못낸다" 며 K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웃나라 일본으로 유학 보낸 가장들도 속을 태우기는 마찬가지. 대구의 한 상장기업 부장인 C(49)씨. 그는 후쿠오카의 세이난가쿠인대학에 다음달 4일 입학하는 딸 생각을 하면 겁이 덜컥 난다고 했다.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800원대에 머물던 100엔 지폐를 이젠 1천600원을 주고 사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하루 용돈을 3천엔으로 잡고 돈을 보내고 있는데 지난해 여름엔 2만4천원만 하면 됐는데 이젠 4만8천원이나 한다. 글자 그대로 '더블'이 됐다.
"내가 딸에게 권유해서 오랫동안 유학준비를 시켰는데 '환율 때문에 유학을 접으라'고 할 수도 없고 정말 난감하다. 나라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선진국으로 나가서 열심히 배워야 하는데 우리나라 통화가치가 이렇게 추락하니 앞이 캄캄하다" C씨는 유학비를 대기 위해서는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책인 술도 끊어야 할 판이라고 했다.
◆헉헉대는 기업들
기업들의 목을 조르는 것은 달러보다는 엔화다. 이자가 싸다는 이유로 엔화를 빌려다 쓴 중소기업들이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다.
대구의 한 산업용소재 가공업체. 지난해 6월 100엔이 950원대에 머물렀던 때 8억원을 빌렸던 이 회사는 지금 원금이 15억원이 됐다. 가뜩이나 매출이 줄어 힘든 판에 부채가 순식간에 2배나 많아진 것이다. 원/엔 환율은 2007년 말까지만 해도 100엔당 835원 수준이었다. 그러다 지난해 말 1천396원으로 올라선 뒤 2개월도 안 돼 이달엔 1천600원선을 넘어섰다. 이 회사 대표는 엔화 빚 생각만 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국내 중소기업들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따졌을 때 전체 은행 엔화대출 165억달러의 95.7%를 차지하고 있다. 엔화대출을 쓴 사람들이 대부분 중소기업이라는 것이다.
엔화 대출금리도 급등하고 있다. 2007년 말 연 3.32%하던 엔화 대출금리는 지난해 말 연 6.06%로 1년 새 2배가량 올랐다.
달러 강세의 타격도 만만치 않다. 원자재 수입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것.
염료와 부자재를 월 평균 1억원어치 사용하는 대구 염색공단 한 업체. 중국에서 전량 수입해 쓰는 염료를 6천500여만원어치 정도 사용했으나 최근 들어 원/달러 환율이 1천500원대 가까이 올라가면서 3천여만원의 추가 부담이 생겼다.
월 평균 100여t의 가성소다를 사용하는 대구의 한 폴레에스테르 감량전문업체 역시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 가성소다 수입업체가 환율을 이유로 ㎏당 150원 하던 가성소다 가격을 이달 들어 340원으로 올리면서 월 2천만원이 원료값으로 더 들어간다.
전통적으로 환율 상승 수혜 업종으로 꼽히는 전자·자동차 관련 수출업체들도 해외매출 감소와 외환변동성 확대 등으로 환율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세계 경기 침체로 수요 자체가 급감하고 있기 때문에 환율 상승에 따른 가격 경쟁력이 매출증대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왜 이리 오르나?
달러값이 오르는 것은 국내외 금융시장의 불안 때문이다. 특히 동유럽 국가 부도설이 최근 나오면서 세계 금융시장에는 다시 먹장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지난해 가을에도 목격됐지만 금융시장 불안이 가중되면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커지고 결국 달러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달러값이 뛰는 것이다.
주식시장에서 외국인들이 자꾸만 우리나라 주식을 팔아대는 것도 달러 수요를 키우고 있다. 외국인들이 주식을 판 뒤 원화를 달러로 바꿔 나가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들은 유가증권시장에서만 이달 10일 이후 11거래일간 1조8천억원 이상 주식을 순매도했다.
엄청난 규모의 달러를 벌어들였던 조선업체의 침체도 원/달러 환율을 끌어올렸다. 조선업체들은 최근 잇따라 수주 취소 통보를 받고 있다.
한편 외환당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점도 환율 상승폭 확대에 일조하고 있다. 당국은 지난 17일 연중 처음으로 5억달러 이상 매도개입에 나섰지만 이후로는 좀처럼 시장에서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엔화값이 오르는 이유 역시 금융불안으로 아시아 기축통화인 엔화를 찾는 수요가 늘기 때문이다.
신영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최근 이례적 엔화강세는 아시아의 기축통화인 엔화로 유동성이 몰리는 안전자산 선호현상에 따른 것"이라며 "엔-케리 트레이드(일본계 자금의 해외투자) 자금 청산도 엔화의 강세를 부추기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환율 어떻게 될까?
전문가들은 일단 올 상반기까지는 원화 약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원화가 가치를 회복하기까지는 상당 기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삼성증권은 24일 원화가치가 하반기 이후 2, 3년에 걸쳐 절상 추세를 보이게 될 것이라며 원/달러 환율은 올해 말 1천300원, 2010년 말에는 1천150원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오현석 투자정보파트장은 이날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원화가 이미 '오버슈팅'(overshooting·경제 여건을 반영하지 않은 지나친 상승)' 국면이라고 전제, "원/달러 환율은 하반기 이후 경상수지 흑자, 은행부문의 단기외채 축소, 외국인 포트폴리오 투자의 유출 진정 등에 힘입어 안정화 단계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엔화 가치 상승은 일단 조만간 제동이 걸릴 것으로 외환 시장 참여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일본의 경기침체가 불가피, 엔화 가치의 상승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김진만기자 factk@msnet.co.kr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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