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5월 6일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여의도에서 열린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대회' 미사 중 순교자 103위를 諡聖(시성)했다. 200년 한국 가톨릭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무려 103위가 한꺼번에 성인의 반열에 올랐으니 가톨릭교회의 큰 경사였다. 기해'병오'병인박해 때 김대건 신부 등 피로써 신앙을 지켜낸 순교자들을 영원히 기억하게 된 것이다. 한국 교회의 순교자 수는 무려 1만 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교회법에 따라 엄격한 심사를 거쳐 시성된 사람이 이들 103위가 처음이었다.
이 시성도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 기해'병오박해 때 순교한 79위는 1925년, 가장 참혹한 박해였던 병인박해 때 순교한 24위는 1968년에 福者(복자)에 오르면서 비롯됐다. 당시 한국 교회의 노력이 있었지만 순교자를 낸 파리외방전교회가 소속된 프랑스 가톨릭교회도 큰 몫을 했다. 그러다 1976년 김대건 신부 순교 130주년을 맞아 국내에서 대대적인 순교자 현양대회가 열리고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마침내 시성의 길이 열린 것이다.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시복시성' 목소리가 가톨릭교회 내부에서 조금씩 일고 있다. 아직은 때가 이르다는 반응이 없지 않고 가톨릭교회도 "시성을 서두르는 것 자체가 교회 전통에 맞지 않고 빨리 되는 것도 아니다"는 입장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나 테레사 수녀처럼 예외도 있었지만 시복시성은 사후 5년이 지나서야 추진되고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해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런 움직임이 있다는 자체가 그만큼 김 추기경이 남긴 발자취가 뚜렷하고 우리 사회에 반향이 크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공자는 "성인은 덕행과 지혜가 완전하여 하늘과 동등한 자리를 누릴 수 있는 자"라고 말했다. 물론 의미는 서로 다를 수 있겠지만 공자가 성인의 도를 배우려 노력하라고 강조한 것은 그들의 삶 자체가 범인에게 귀감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가톨릭교회에서는 새로운 125위 시복시성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한국인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1821~1861),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 등이 포함돼 있다. 이들과 함께 김 추기경이 성인의 반열에 오른다면 이 또한 우리 한국인들에게 복된 일이 아닐까.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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