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하면 유치원 시절부터 대학까지 다섯 번의 추억이 있다. 누나 여섯에 막내이자 외동 아들의 특혜를 누리다 보니 부모님들은 남들 하는 것(?)은 다 해주신 듯하다. 큰누나와는 두 띠 동갑으로 마치 초보 엄마와 아들 같아서 유치원 입학식 때에도 원장 선생님이 엄마로 오해하여 준비물과 과제물을 누님께 고스란히 당부하셨다.
농촌에 살면서 없는 살림살이에 맏이다 보니 누님은 시집갈 나이도 훌쩍 넘겨 동생들 뒷바라지와 부모님 일손을 돕느라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지 못하고 대학 진학의 꿈을 접었었다. 누님은 막내 동생을 아들처럼 다독이며 서른이 훌쩍 넘어서야 제 짝을 찾으셨다. 나의 졸업 때는 누구보다 더 기뻐했다. 대학 졸업장만 따면 무조건 취직이 되는 줄 시골 어르신, 두 양반들은 철석같이 믿고 계셨다. 졸업하고 몇 년 동안 백수 생활을 하다 겨우 일자리를 찾아 지금의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다. 부모님은 무슨 대기업의 과장인 양 동네방네 자랑을 하시는 모양이다. 지금도 누님은 자식 걱정보다 내 걱정에 고심을 하고 계신다.
누님들이 여섯 분 계시지만 모두가 총명하시고 학교 시절 누구네 딸들은 마을에서 이름 난 공부벌레니, 그 집 딸들은 천재이니 하는 유명한 전설이 되기도 했다. 큰누님은 동생들을 생각하고 고교 졸업장이 마지막이지만 다른 누님들은 모두 교대를 졸업하시고 지금 다들 교편을 잡고 계신다. 속마음은 내심 숨기고 계시지만 얼마나 '학사모'를 쓰고 싶었을까,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지금도 누님댁에 가면 뒤 베란다 다용도실에는 책들로 가득 차있다. 새로 나온 신간이 아니고 모두가 재활용 수거에서 나온 헌 책들이다. 국어사전부터 옥편, 소설, 수필, 시집을 비롯하여 오래된 책들로 빽빽이 쌓여 있다. 어떤 책은 낡아 테이프로 붙여져 있기도 하고, 어떤 책은 하도 많이 읽어 겉 표지가 닳아 알아 볼 수가 없을 지경이다.
글 쓰기 좋아하는 누님은 고교 시절, 작가가 꿈이었다. 어려운 집안 살림에 모든 것을 혼자 삭이고 꿈을 접었지만 지금도 누님은 꿈을 버리지 않은 채 오래도록 가슴에 묻고 사시는 것 같다.
가끔씩 글 쓰기를 좋아하며 감수성이 남아 있는, 아직 소녀 같은 누님의 일기장과 글 솜씨는 따뜻하다 못해 가슴이 시리다. 더 늙기 전에 우리 육 남매가 조금씩이라도 보태어 울 누님 평생 교육원이라도 등록해 드리고 싶다. 누님, 원하시는 공부 계속해 보시고 학사모 꼭 한번 써 보세요. 이제야 철드는 막내 동생 드림.
최수영(대구 북구 동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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