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사람과 사랑

입력 2009-02-18 13:20:11

김소운의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을 읽고 가슴 저렸던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 중 가장 오랫동안 싸한 기억이 남아 있는 것은 夫婦愛(부부애)를 다룬 세 번째 이야기다.

해방 직후, 사업에 실패한 남편은 서울에서 京春線(경춘선)을 타고 춘천으로 가 사과를 팔았다. 어느 날 나간 남편은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내는 춘천으로 갔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혹시나 하고 정거장에 들렀더니 표를 사는 줄에 남편이 있었다. 사과가 상해 제값을 못 받자 남편은 친구 집에 머물면서 며칠에 걸쳐 사과를 팔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세 시간이나 걸려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남편은 한 번도 아내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 후 남편은 6'25 때 죽었지만 아내는 어린 자녀를 훌륭히 키웠다. "지금까지 살아 올 수 있었던 것은, 춘천서 서울까지 제 손을 놓지 않았던 그이의 손길, 그것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어린 마음에 그 모습을 떠올리곤 '얼마나 부끄러웠을까, 그리고 얼마나 행복했을까'라고 생각했다. 해방 직후라는 그때를 돌이켜보면,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세 시간이나 손을 꼭 잡았던 이 부부는 평소에도 온 '存在(존재)를 기울여' 서로 사랑했을 것이다.

경제 위기로 家計(가계)가 빠르게 무너지면서 급식비를 못 내는 학생이 많다. 지난해 8월 말 현재, 한 달 이상 급식비를 못 낸 대구의 초'중'고생이 4천706명이라고 한다. 지난해 말부터 대량 실직사태가 본격화됐으니 지금 그 숫자는 훨씬 더 늘어났을 것이다. 심지어 급식비가 몇 개월씩 밀려 급식 중단 위기에 놓인 학생도 있다고 한다.

청소년들의 밥 한 끼는 단순한 한 끼 이상의 의미가 있다. 사춘기 한때의 어려움 때문에 혹여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까 두렵다. 그나마 대구시 교육청이 학교 급식비 지원 대상을 크게 늘리고, 학교마다 급식 상담창구를 만들어 어려운 학생들을 돕고 있다니 다행이다.

옛말에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다고 했다. 너무 멀리 계신 나라님이 못하면 이웃이나 학교가 하면 된다. 부부가 손을 꼭 잡은 그 세 시간은 홀로 된 아내가 평생을 버틸 수 있는 힘이 됐다. 우리가 내민 손 하나가 다른 이의 평생 버팀목이 된다면 수백 번이라도 더 내밀어야 할 터이다. '사람'과 '사랑'이라는 낱말이 겨우 밑받침 하나 차이밖에 없는 것은 '사람은 늘 사랑해야 한다'는 깊은 뜻이 숨어 있어서라고 믿는다.

정지화 논설위원 akfmcp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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