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2일 국회 본회의에서 법사위 심의를 거쳐 상정된 정부의 변호사시험법안이 부결되었다. 정부가 제출한 법률안임에도 불구하고 표결에 참여한 여당 의원 132명 중 찬성은 54명에 불과했고, 반대가 49명, 기권이 29명이나 되었다. 이것은 한나라당의 '입법 속도전'이 얼마나 졸속인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역사에서 커다란 의미를 가지는 사건이다.
애당초 법무부가 주도한 정부안 자체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시험을 통한 선발'로는 '21세기의 법률가'를 길러낼 수 없다는 인식 아래, '교육을 통한 양성' 쪽으로 법률가 양성제도의 중심을 옮기기 위해 도입된 것이 로스쿨이다. 변호사 시험은 바로 그러한 로스쿨의 성패를 좌우할 중요한 제도로서, 로스쿨과 밀접한 연계를 맺으면서 그것을 지원할 수 있도록 구성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안에서는, 현행 사법시험보다 변호사시험의 시험 과목을 더 늘리도록 규정함으로써, 변호사시험을 사법시험보다 더 부담스러운 시험으로 만들어 놓았다. 또 법무부 차관을 사실상 당연직 위원장으로 하고, 13명의 위원 중 과반수에 법조들을 위촉하여 시험관리위원회를 구성하도록 규정함으로써, 변호사시험을 법조가 주도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학부에서 다양한 전공에 관한 지식을 익히고, 사회 생활을 통해 많은 경험도 쌓고, 법률가가 되겠다는 명확한 목적 의식을 가지고 로스쿨에 입학해서, 3년 동안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치르는 변호사시험이, 그러한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치르는 사법시험보다 더 '무거운' 시험이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변호사시험은 법률가로서의 기본 소양과 자질을 확인하는 시험이니 훨씬 '가벼운' 시험이 되어야 마땅하다.
또 로스쿨 시대의 변호사들은 법정 업무를 훨씬 뛰어넘어 정치·경제·외교·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다양한 법 관련 업무를 담당할 사람들이니, 변호사시험을 법무부가 주관해야 할 이유도 없고, 그 시험에 판사·검사가 관여해야 할 이유도 없다. 변호사시험은 로스쿨에서의 교육을 확인하는 시험이니 그 교육을 담당하는 로스쿨 교수들이 주관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다수가 판사·검사·변호사 출신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법사위는 정부안조차 더욱 뒤틀어버렸다. 논술형 필기시험에 "실무능력 평가"를 추가하여 시험을 더 어렵게 만들고, 시험관리위원회의 판사·검사 위원 수를 각각 1명에서 2명으로 더 늘려 법조 주도를 강화했다. 그렇게 해서 본회의에 상정된 정부안이 결국 부결되고 만 것이다.
만에 하나 정부안이 가결되었다면, 사법시험보다 더 부담스러운 변호사시험을 치러야 하는 로스쿨 학생들은 시험 과목 이외의 다양한 법 과목을 이수할 여유를 가지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심지어 로스쿨의 강의실을 떠나 '고시 학원'을 찾는 학생들조차 생겨났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로스쿨의 존립근거 자체를 허물어뜨리는 일임은 말할 것도 없다.
정부안과 법사위 심의는, 로스쿨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좁은 경험에만 터잡은 낡은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법시험 출신 법조가 빚어낸 '기득권 지키기' 시도였다. 시험을 쳐야 공부를 한다는 '시험의 신화', 법 실무는 법정에서의 소송 기술이 전부라는 '송무의 신화', 법률가의 숫자를 통제해야 한다는 '숫자의 신화'가 만들어낸 '로스쿨 뒤틀기' 기도였다.
정부안의 부결에 의해 잘못 채워진 첫 단추가 풀리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로스쿨에 대한 올바른 이해 위에 변호사시험의 첫 단추부터 새로 채워야 한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로스쿨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사법개혁위원회 건의문(2004.12.31)이 밝힌 것처럼, 변호사시험은 '법률가로서의 기본 소양 및 자질을 평가하는 시험으로 법학전문대학원의 교육과정을 충실하게 이수한 경우 비교적 어렵지 않게 합격할 수 있는' '자격시험'이 되어야 한다. 최소한의 기본 과목에 대해 실시하는 시험이 되어야 하며, 로스쿨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주관하는 시험이 되어야 한다.
김창록 (경북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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