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대경인]김성광 목사

입력 2009-02-16 06:00:00

카트만두 시내에 있는
카트만두 시내에 있는 '네팔-코리아 동산메디컬센터'에서 김성광 목사 부부가 다리를 다친 어린이의 치료를 지켜보고 있다. 카트만두 시내에 있는 '네팔-코리아 동산메디컬센터'에서 김성광 목사 부부가 다리를 다친 어린이의 치료를 지켜보고 있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네팔에서는 사가르마타(Sagarmata)라고 부른다. '우주 만물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그 어머니 아래 네팔 땅에는 안나푸르나 등 8,000m급 봉우리가 8개, 6,000m급은 1천300개나 우뚝 솟아있다.

'신비의 나라' 네팔은 하지만 아름다운 히말라야 산맥의 그늘 속에 아픈 상처를 감추고 있다. 오랜 내전으로 정국은 불안하고 경제는 여전히 세계 최빈국 수준이다. 2006년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네팔의 1인당 국민총소득은 270달러에 불과하다. 도로망 등 인프라는 물론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을 위한 사회안전망도 열악하기만 하다. 그런 네팔에서 김성광(52) 목사는 16년째 활발한 봉사활동을 펴면서 네팔인들에게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대구보건대학 물리치료과를 졸업한 그가 네팔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92년. 학교를 졸업한 뒤 대구 동산병원에서 물리치료사로 근무하던 중 "봉사가 절실한 곳"이란 교회 친구의 말에 1주일간 휴가를 내고 왔던 것.

하지만 카트만두공항을 빠져나온 그의 눈에 비친 네팔의 상황은 예상보다 훨씬 나빴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정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제 전공인 장애인 관련 복지시설은 전무했으니까요.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남은 제 인생을 네팔인들을 위해 봉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993년 10월 다시 네팔을 찾은 그가 본격적인 봉사를 시작한 곳은 카트만두에서 차량으로 36시간 떨어진 도티(Doti)지역. 도로공사를 하면서 직원 의무실을 현지주민을 위한 이동병원으로 개방했던 한국건설업체가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주민들을 계속 돌볼 후임자를 못 찾아 애를 먹고 있다는 소식에 한걸음에 달려갔다.

"1년 동안 병원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현지인들과 친해졌습니다. 당시 인도에서 페스트가 발생해 국경이 폐쇄되고 주민들도 모두 피난가는 일이 벌어졌는데 저는 차마 떠날 수 없었습니다. 물론 그 일 이후 저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눈길은 더 따뜻해졌죠."

1995년 카트만두로 돌아온 그는 당초 계획대로 장애인들을 위한 봉사에 본격 나섰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장애인들의 자립 기반 마련을 위한 직업훈련. 현지인 재단사를 채용해 허름한 가정집에서 봉재기술을 가르쳤다.

"네팔은 장애인이 전체 인구의 15%나 됩니다. 가난한 나라에 의료시설이 풍족할 리 없고 어릴 때부터 보건교육도 제대로 못 받는 탓이죠. 장애를 천형(天刑)으로 생각하고 방치하는 사회분위기도 문제입니다."

네팔의 장애인 복지에 큰 문제가 있음을 깨달은 김 목사는 장애인을 돌볼 전문인력 양성이 가장 시급하다고 판단했다. 선진국들의 원조로 장애인을 위한 특수시설은 일부 있었지만 자격증제도조차 없던 터라 전문인력이 전무했던 것.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했던가. 현지 정부 관계자를 찾아다니며 설득하던 중 1998년 장애인 복지관련 학술대회가 카트만두에서 열렸고 김 목사는 한국에서 온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결국 그들의 도움으로 네팔 트리부반국립대에 특수교육과가 2004년 개설됐다. 네팔 유일의 특수교육 전문가 양성기관이다. "요즘에는 정부 산하에 특수교육대학원을 설치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또 대학 졸업생들의 실습을 위한 특수학교 설립도 추진 중입니다. 장애인시설이 300개로 늘었지만 행정지원체계는 아직 부족하기만 합니다."

지난 1983년 결혼한 부인 장성란(51)씨는 카트만두공항 인근에 있는 '네팔-코리아 동산메디컬센터'의 운영을 맡고 있다. 대구 동산병원 의료선교복지회가 기금을 지원, 2002년 문을 연 이 병원은 네팔 최고수준의 시설과 치료를 자랑한다. 고산지대인 탓에 피부과 환자가 많아 처음에는 피부과만으로 출발했지만 2005년부터 치과도 운영하고 있다. 피부과에는 네팔인 의사 3명, 치과에는 네팔인 의사 1명과 한국에서 봉사 온 강진수(35)씨가 환자들을 치료해주고 있다.

환자는 한달 평균 800명 선. 하지만 병원 바로 뒤 빈민촌에 모여 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을 위한다는 당초 설립목적대로 대부분의 환자는 돈을 내지 않는다. 단 비용이 많이 드는 고급치료를 받는 일부 환자들에게는 실비를 받는다.

"1년에 2, 3회 정도 무료봉사기간을 정해 운영할 때는 환자들이 하루 300명이 넘게 옵니다. 부유층들도 일부러 무료봉사기간을 기다렸다가 치료받기도 합니다. 하하하."

'천사들의 집'(angel's home)이란 보육원도 1997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현재 어린이·청소년 26명과 현지인 직원 3명, 한국에서 온 자원봉사자 1명 등 30명의 보금자리다. 이곳에 있는 어린이들은 모두 결손가정 출신으로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머무를 수 있다.

"네팔은 15세쯤이면 결혼하는 조혼풍습이 있는데 이혼율이 높아 결손가정이 많습니다. 하지만 보육원 아이들이 커서 학교 선생님이 되기도 하고 대학에 진학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이 같은 다양한 분야에 걸친 헌신적인 봉사활동으로 그는 지난달 10일 네팔 정부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다. "제가 네팔에서 계속 봉사하는 이유는 순박하고 때묻지 않은 네팔과 네팔인들이 좋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외국인인 덕분에 오해를 받기도 해 답답할 때도 있지만 그들의 해맑은 미소를 보면 눈 녹듯 사라집니다. 마음이 따뜻한 이웃과 함께 살고픈 자원봉사자라면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더레이 던녀반(대단히 감사합니다)!"

네팔 카트만두에서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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