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복위운동은 순흥 땅에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낳았다. 이야기 속에서 당시 순흥 고을이 얼마나 처참했고, 백성들이 상상 이상의 가혹한 버림을 받았는지 엿볼 수 있다. 또 지금도 금성대군은 순흥 땅에 또 다른 형태로 살아 숨쉬고 있었다.
◆압각수=압각수는 은행나무의 딴 이름으로 잎사귀 모양이 마치 오리발 같다고 해서 생긴 명칭이다. 지금의 금성단 옆 은행나무를 말하며 나이는 1천년 정도로 추정된다. 압각수에 얽힌 이야기는 이렇다. 단종복위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순흥도호부가 폐지되고, 세조의 군사들이 죽령을 넘으니 순흥의 개, 닭이며 초목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사방 삼십리의 피바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무렵 압각수가 절로 말라 죽었으니 마을 아이들도 나무를 안고 울었다. 압각수는 바람과 비에 상하고, 껍질이 벗겨지고 속이 비어 남은 것이라곤 밑동뿐이었다. 세월이 흘러 순흥도호부가 폐지된 지 224년 만인 숙종 때 비로소 새 가지가 나고 잎이 무성하더니 과연 이듬해 순흥도호부가 복설되었다. 비록 압각수가 식물이지만 금성대군이 단종복위를 꾀할 때 미리 알아 시들어 죽음으로써 엄청난 화를 예고했고, 순흥도호부가 복설되기 전 해에 잎이 되살아났으니 그 반가움을 또 미리 알렸다는 것. 금창헌 영주 소수박물관장은 "압각수는 순흥의 역사와 함께했고, 지금도 건강하게 순흥 땅을 묵묵히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청다리=부석사 방향으로 소수서원 입구를 지나자마자 나타나는 다리가 있다. 다리 이름은 제월교로 퇴계 이황이 붙였으나 이 지역 사람들은 '청다리'라고 부른다. 청다리는 단종복위와 관련된 슬픈 사연이 있다. 단종복위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단종복위에 동조했던 순흥의 수백명 선비들과 그 가족들이 희생되었다. 그때 어렵사리 살아남은 어린 아이들이 청다리 밑에 숨어 들었고, 이들 어린 아이를 데려다 키운데서 '청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청다리 전설은 일제 강점기 때 제국주의자들이 식민통치의 걸림돌이 되었던 유림들을 비하하기 위해 '유생들이 연애해 낳은 사생아를 버린 곳'으로 왜곡되기도 했었다고 한다. 청다리 전설은 단종복위운동 당시 순흥이 얼마나 처참했는지를 증언하고 있다.
이종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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