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미술 걸작전 / ~3.22/ 덕수궁미술관
겨울 방학이라는 시즌 때문인지 지금 국내에는 대형 해외 미술전들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눈길을 끄는 블록버스터급 전시회들이 서울에만 몰리는 것도 문제지만 차비를 차치하고도 입장료가 또 적은 부담이 아니다. 그런 가운데 덕수궁 미술관이 무료 관람으로 초봄의 기운을 느끼기에는 아직 좀 이르다지만 도심 속의 한적한 고궁을 거닐어 보는 즐거움과 우리 근대미술의 대표작들을 총망라해 한 곳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근대 미술의 중요한 위치에 대구 출신의 작가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지만 그들의 성취를 역사적 전환기의 다른 많은 작가들과 비교하며 감상한다면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지난 여름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에서 열렸던 '자아 이미지: 거울 시선'展에서도 서동진과 이인성의 자화상이 이번 전시의 포스터로 선택된 이쾌대(그 역시 칠곡 출신으로 수창 초교를 나왔다)의 자화상과 함께 나란히 나온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작가들의 작품에 주어지는 미술사적 평가의 무게를 확인할 수 있다.
전시의 시작은 춘곡 고희동의 자화상을 맨 앞에 놓고 서동진과 이쾌대의 자화상으로 이어지는데 함께 전시한 두 사람의 팔레트에 특히 눈이 간다. 자신의 팔레트 박스 뚜껑 내면에 자화상을 그린 서동진은 대구 서양 화단의 개척자다. 미소 띤 청년 화가의 얼굴이 함께 들어 있는 빛바랜 팔레트와 같이 역사의 아우라를 형성한다. 그 이미지가 문득 마르셀 뒤샹의 아티스트 박스를 연상하게도 하면서 수채화로 시작된 대구 서양 화단의 상징적인 오브제란 생각이 든다. 그의 수채화 '뒷골목'과 또 이인성의 '가을 어느 날'과 같은 작품들이 우리에게 더욱 매력적인 것은 한때 이 지역에서 창작되어 전시되곤 했을 당시의 향수를 자극하는 역사적인 유물인 동시에 여전히 아름다움을 불러일으키는 미학적 구성물로 높이 평가받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의 타이틀 그림이 된 '푸른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은 16세기 독일의 알브레히트 뒤러가 예수의 모습에 빗대 그렸던 자화상을 참조했다. 굵고 짙은 눈썹, 크고 형형한 검은 눈망울에 깊은 호소력을 담고 있는 인물은 풋풋한 고향의 들과 산천을 배경으로 양 손에 붓과 팔레트를 올려잡고 서있다. 혼란스런 해방 공간에서 새 봄을 맞은 조국의 현실을 직시하는 선지자처럼 화가가 해야 할 일을 말없는 웅변과 시로 보여주고 있어서 식민지의 굴욕을 경험한 우리 미술의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시키는 아이콘처럼 되었다. 이쾌대는 소재 선택이나 주제에 대한 접근 방법에서 소재주의나 관념적 '향토색'을 뛰어넘어 우리 전통서화의 평면적인 채색법이나 선묘적인 특징을 탐구한 양식적인 시도로 나아간 화가다. 서동진의 팔레트가 대구 미술의 새벽을 두드린 것이었다면 그의 손에 들렸던 팔레트는 우리 근대 미술의 자존심을 세운 의식이라고 보고 싶다.
105명의 232점에 이르는 작품들로 총 5부로 구성된 전시는 몇 번이고 가볼만한, 이름 그대로 '걸작전'이다.
미술평론가 ydk8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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