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명문대학 입학 조건

입력 2009-02-11 10:38:28

財力'정보력'체력 3박자 필수, 그러고도 졸업후 태반이 백수

대학 입학 시즌을 앞두고 항간에 이런 우스갯소리가 나돌고 있다고 한다.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려면 세 가지 조건을 꼭 구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는 할아버지의 財力(재력)이요, 두 번째는 부모의 情報力(정보력), 그리고 세 번째가 수험생 본인의 體力(체력)이라는 얘기이다.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만 갖추지 못해도 숫제 명문대학에는 들어갈 수 없다는 논리인데 가만히 듣고보면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 요즘 부모들은 자식 하나 대학 보내는 데 드는 비용이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家長(가장) 한 사람의 수입으로는 가족들 먹고살기도 빠듯한 게 현실이 아닌가.

그러니 재력 있는 할아버지가 손자 손녀 교육보험이라도 넉넉하게 들어놓지 않았다면 고액과외는 고사하고 너나없이 보내는 일반 학원비 부담만으로도 벅찰 지경이다. 요즘 아이들의 성적은 투자한 만큼 향상된다고 한다. 재력이 곧 학력인 것이다.

다음으로 부모가 사교육 시장에 대한 정보와 복잡다단한 입시전형에 대한 이해와 분석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이야기는 불문가지이다. 그뿐이 아니다. 이 두 가지를 다 확보하고 있어도 정작 수험생인 자녀의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또한 허사인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명문대학에 들어가기란 이렇게 지난한 과업이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의 유수한 대학에 들어갔다고 치자, 그 후의 일 또한 만만치 않다. 다락같은 등록금이며 하숙비는 이미 각오한 일이겠지만, 자녀가 동료 학생들 사이에서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으려면 또다시 재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구에서 서울의 손꼽히는 명문대학에 진학한 어느 학생의 고백은 자녀 교육에 대한 방향성마저 혼란스럽게 한다. 더러는 같은 대학 같은 학과 학생들 사이에도 신분의 차별이 있다는 것이었다. '노는 문화'가 다르다는 것이다. 바로 재력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자녀에게 대학 졸업장 하나를 쥐여주기 위해 온 가족이 매달려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대학문을 나서면 기다리는 것은 무엇인가. '이십대의 태반이 백수'라는 이 시대에 '졸업은 곧 실업'이라는 등식을 피하기가 쉽지 않다.

조선왕조가 몰락하고 신분제가 폐지되면서 대학은 곧 입신양명과 신분상승의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 그러나 이제는 대학 졸업장만으로는 상류사회 진입은커녕 중산층으로 살아가기도 힘겨운 세상이다. 그런데 왜 모든 학생들이 저마다 대학에 가려 하고, 자녀의 대학 진학에 부모들은 어떠한 희생이라도 감수하려 드는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낭비가 아닌가.

학교를 거의 다니지 못했던 에디슨이 大學無用論(대학무용론)을 주장하자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반박했다고 한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배우기 위해서라면 굳이 대학에 갈 이유가 없다. 그건 책으로도 충분하다. 대학의 진정한 가치는 단순한 사실의 습득이 아니라, 책에서 배우기 힘든 뭔가를 상상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데 있다."

그렇다면 중고교 시절은 오로지 대학을 위해, 또 대학은 취업을 위해 있는 오늘의 우리 교육현실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나. 오늘날 우리 대학사회는 어떤 비전과 사명을 가지고 있는가. 지난날의 대학은 그래도 진리와 학문의 전당임을 자처하며 민주화와 근대화에 실질적인 기여를 해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 그 많은 대학과 대학생들의 정체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학력 인플레이션이 취업난을 부르고, 그것이 오히려 대중사회와 민주주의 기반인 중산층 붕괴를 부채질하고 있지는 않은지.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오늘날 학부모들이 대학생이던 1970, 80년대가 차라리 그립다. 그때는 할아버지의 재력까지 동원하지 않아도 명문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고, 초등교육조차 제대로 마치지 못한 부모들도 자갈논을 팔아 자식 대학 시킨 것만으로도 대우를 받았다.

소위 중산층이라 자부하는 요즘 학부모들은 어떤가. 허리가 휘어지도록 맞벌이를 해서 자식을 대학에 보내고 졸업을 시키는 것도 모자라, 운수 사나운 경우는 백수 자녀와 손자 손녀까지 먹여 살려야 할 팔자가 될 수도 있다. 그뿐인가. 죽어서도 재력 없는 무능한 조상이라 욕먹게 생겼으니, 이런 낭패가….

조 향 래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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