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과 실력 앞에, 실업은 없어라"
지난 10일 낮 대구 북구 칠성동 대구직업전문학교 영어반 강의실. 스피커에서는 AP뉴스가 원어 그대로 흘러나오고 수강생들은 부지런히 스피커 속 소리를 따내 문장으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제법 빠른 속도의 뉴스지만 수강생들은 상당 부분을 알아듣는 듯했다.
사소한 내용조차 강사는 영어로 지시했고, 수강생들 역시 우리말은 까먹은 듯 영어로만 답했다.
6개월간의 수강 후 취업률이 80%에 육박한다는 이곳. "나는 왜 취업이 안 될까?" 자포자기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이 강좌는 해답을 던져주고 있었다.
◆열심히 배우기만 한다면
4년제 대학 응용화학과를 졸업한 권나영(22·여)씨. 그는 응용화학을 좋아해 지원했지만 재학 중 자신의 적성이 다른 곳에 있음을 알았다. 그가 뒤늦게 발견한 자신의 적성은 항공사 근무.
하지만 그에겐 이를 감당할 실력이 없었다. 가장 큰 약점은 영어였다.
"영어 실력을 체계적으로 쌓을 길을 찾아봤어요. 사람들은 누구나 사설학원만을 찾게 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다른 길이 많습니다. 제가 다니는 강좌는 쉽게 말해 직장을 얻지 못한 실업자들의 취업과정이죠. 교육내용도 정말 알차지만 실직자 취업과정인 만큼 국비가 지원되는 무료강좌랍니다. 매달 11만원의 훈련비까지 받습니다. 교재도 물론 무료지급이죠. 지금 불경기인데 취업이 안 되니 속상하다며 발만 구르지 말고 지금 집 밖을 나와 작은 일부터 도전해 봐야 합니다."
그는 영어실력이 쑥쑥 느는 것이 느껴진다고 했다.
올해 서른넷인 한상호씨도 이곳에서 '영어 땀'을 흘리고 있었다. 4년제 대학에서 운동처방을 전공한 그는 영어실력을 닦아 좋은 기업체에서 운동처방사로 일하는 것이 목표.
"아무래도 큰 기업에 가기 위해서는 영어 실력을 닦아야 합니다. 노동자 500인 이상 대기업이나 초중고교에는 제도적으로 운동처방사를 두도록 할 겁니다. 취업기회가 많아질 것 같은데 영어가 부족했어요."
4년제 대학 법대를 나와 이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구경은(30·여)씨는 "이제 젊은이들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뭔가 완벽하게 만들어 특정한 직장에 가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차근차근 배우면서 경험을 쌓을 궁리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야간대학에 다니면서 이 강좌를 듣고 있는 이승아(23·여)씨는 "취업을 못하는 이유는 자기 적성을 못 찾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는 길이 많다. 여러 가지 과정을 수강하면서 자신의 적성을 찾고 그 뒤에 원하는 직장을 얼마든지 골라 잡아갈 수 있다"고 했다.
수강생들은 이구동성으로 "국가가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얼마든지 있다"며 취업을 위해서는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 노력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열심히 배웠더니
이 강좌 졸업생 명부를 얼핏 봤더니 각종 회사의 무역업무 담당자, 영어학원 강사, 직업훈련원 교사에다 해외 호텔 근무자까지 다양했다. 졸업 후 80% 가까이 취업을 한다는 것. 나머지 20% 역시 취업의뢰가 왔지만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아 '안 간 것'이라고 직업전문학교 측은 설명했다.
대구역 관광통역안내소에서 근무하는 이 강좌 졸업생 김명주(25·여)씨는 "직업전문학교 영어강좌가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고 했다. 자신의 취업문을 열어줬다는 것.
"하루 6시간 내내, 6개월 동안 영어만 쓰는 교육환경은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관광통역안내소에는 하루 평균 외국인들이 15명 가까이 오는데 강좌에서 닦은 실력 덕분에 전혀 어려움이 없습니다. 지난해 3월부터 6개월 동안 공부했는데 제 동기들 중엔 해외취업도 했고, 대기업에 간 동료들도 있었습니다. 무역회사, 영어강사 골라잡아 갔다고 보면 되겠죠. 실력 앞에서는 실업이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전문대 출신인 김씨는 직업전문학교의 강좌 덕분에 취업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대구의 한 안경회사 무역부에 근무하는 이 강좌 졸업생 정혜영(26·여)씨. 4년제 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 역시 "배움 앞에, 실력 앞에 실업이란 것은 더 이상 머물러 있기 힘들더라"고 했다.
대구직업전문학교 강맹석 교장은 "졸업하고도 직장을 얻지 못한 청년실업자, 직장에 다니다 구조조정을 당한 실업자들은 낙담하고 실망하기 쉽다. 자신감을 잃어 뭐든지 하기 싫고 무력감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조금만 눈을 크게 뜨고 둘러보면 새로운 인생을 열 수 있다. 부모님 등 주변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얼마든지 새로운 배움의 길을 열 수 있는 만큼 직업훈련과정을 눈여겨보는 것이 좋다. 생각외로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경우가 엄청나게 많다"고 충고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직업 훈련을 받으려면?=대구종합고용지원센터(수성구 범어동)나 북부종합고용지원센터(서구 내당동), 구직등록 인터넷 홈페이지(www.work.go.kr) 등에 등록한 뒤 자신이 선택한 과정을 가르치는 직업훈련 기관에 관련 서류를 제출하면 된다. 대구노동청은 신청자들에게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한 선착순으로 교육의 기회를 준다. 교육과정을 마친 사람에게는 직장도 알선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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