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의 대학과 책] 근대 중국의 토비 세계

입력 2009-02-11 06:00:00

(창비, 2008), 손승회(영남대학교 교수)

책은 지혜의 원천입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볼 수 있는 요술 거울이기도 합니다. 화수분처럼 퍼낼수록 샘은 더 깊어지고 풍부해집니다. 자주 보면 볼수록 더 많은 것이 보이고 더 뚜렷이 보입니다. 더군다나 찾고자 하는 자는 누구든지 언제든지 무엇이든지 찾을 수 있는 곳이 책입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내외적으로 사면초가에 처한 상황에서는 반드시 책을 찾아야만 합니다. 책 속에서 길을 찾고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손승회 교수의 '근대 중국의 토비 세계'(창비, 2008)가 바로 그러한 책들 중의 하나입니다. 멀쩡하게 일하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주변인으로 전락하고, 생존을 위한 그들의 행위조차 악으로 치부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책입니다. 무엇을 반성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저자 손승회 교수는 사회의 하층민 또는 비주류에 대한 경험과 이들에 대한 무원칙한 애정을 가진 분입니다. 그래서 독자들에게는 조금 낯설 수도 있는 근대 중국의 약탈 집단인 토비(土匪)와 비밀결사적 방어집단인 홍창회(紅槍會)를 소재로 삼은 것 같습니다. 사회적 약자이자 소외 집단인 그들의 생존 방식과 생존 전쟁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였습니다. 동시에 그들을 '악의 집단'으로 규정한 통치 엘리트가 오히려 건설과 혁명을 위해 '악'과 합종연횡하는 이율배반적인 인간사회의 진면목도 소상하게 그렸습니다.

토비는 몰락한 지역 하층민들로 구성된 보편화된 생존 수단으로서의 결사였습니다. 그것은 근대 중국이 당면한 단순한 사회 문제의 하나가 아니라 불가피한 현실이었고, 중요한 사회 현상이었습니다. 토비는 무장력과 근거지를 갖춘 지역 정치세력의 하나였고, 군벌·국민당·공산당 등 정치 세력들이 앞다투어 관계를 맺으려 할 정도로 수적 방대함이나 분포의 광역성을 갖춘 집단이었습니다. 홍창회는 토비에 대항하는, 대척점에 서 있는 자위조직이었습니다. 부적을 태워 마시거나 각종의 금기와 훈련을 거쳤고, '총칼을 맞고도 죽지 않는다(刀槍不入)'는 주술을 신봉하였습니다. 독특한 종교적 주술 때문에 백련교(白蓮敎), 혹은 의화단(義和團)의 후예로 지목되면서 남방 천지회(天地會) 계통의 회당(會黨)과 대비되는 북방교문(敎門)의 대표적 비밀결사로 규정되기도 하였습니다. 1920년대에 이르러서는 수백만의 무장 세력을 기반으로 '화북 정국의 균형추' 역할을 담당했고, 국민혁명운동의 중요 협력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중국 사회는 민정치안조직이 약화되고, 군정치안조직은 오히려 수탈세력화되고, 토비 세력까지 활개를 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주술을 이용한 사적 치안조직으로서 홍창회가 결성된 것입니다.

손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이들 토비 세계는 지역성 혹은 지역주의를 바탕으로 연환성(連環性)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토비 세계의 중심축인 토비·홍창회·군벌, 삼자는 상호간 대립·차별의 관계이면서 동시에 연합·동질의 관계를 수시로 형성했다는 것입니다. 외부인의 시각에서 볼 때는 토비 세계가 미신과 폭력으로 가득 찬 반문명적이고 반사회적이며 이단적인 세계로 비쳐질 수 있지만, 내부의 입장에서 보면 토비 세계의 발생과 발전에 대한 납득할 만한 계기와 불가피한 동기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세계를 유지하기 위한 나름의 절차와 법칙, 그리고 다양한 기법이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저서의 말미에서 저자는 토비 세계가 약탈, 파괴, 그리고 미신이라는 본질적 한계로 말미암아 궁극적으로 성공할 수 없었지만 국민국가의 부재, 혹은 몰락한 지역민이 생존 수단으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적 질서였던 것은 분명하다고 결론을 맺었습니다.

선과 악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빛이 만든 어둠을 악이라고 치부한다면 어둠이 일소된 빛은 더 밝아져야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역사학자 손승회 교수는 바로 이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약하고 소외된 이들의 세상이 바로 우리들 세상이고 우리들의 실제 모습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수려한 필치로 토비들의 은어와 홍창회의 주문 등을 재미있고 흥미롭게 다룬 것은 토비도, 토비를 만든 엘리트도 궁극적으로 하나라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입니다. 스스로 가진 자라고 생각하는 우리들, 행여나 '주변'에 대한 적대감, 선입견 때문에 우쭐해 있지나 않은지?

노동일(경북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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