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사형제도를 다시 생각하며…

입력 2009-02-10 06:00:00

최근 경기경찰청은 강호순을 부녀자 7명을 연쇄 살인한 혐의자로 발표했다. 사람을 7명이나 살해했다는 것도 끔찍한 일인데, 언론은 그가 자신의 범행을 책으로 출판하고 인세를 자신의 두 아들이 받도록 하겠다는 말까지 했다고 전하고 있다. 게다가 인간으로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반성은커녕 수사과정에서 농담까지 한다고 하니 인면수심(人面獸心)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끔찍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흉악범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진다. 대다수의 사람은 끔찍한 범죄, 특히 살인은 피해자의 인간성에 대한 절대적인 침해이기에 이것을 보상하는 방법으로 범인을 사형에 처하는 것은 당연하고 올바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렇게 범인을 사형에 처하는 것이 사회적 안전성을 확보하고 흉악범죄를 막을 수 있기에 사형제도가 지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형제도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흉악범을 사형에 처한다는 것은 결국 사회적 제도를 통해 범죄를 저지른 자에게 복수하는 것이 아닐까? 또 과연 흉악범을 사형에 처한다고 그가 저지른 해악이 보상되거나, 정당한 도덕적 질서를 세우는 데 도움이 될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흉악범을 사형시킨다고 그 해악이 보상되는 것이 아니라 공권력에 의해 또 다른 사회적 살인이 저질러지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침해당할 수 없는 천부적 권리인 인권을 지니고 있다. 생명권을 포함한 모든 인권은 그 어떤 경우에도 침해될 수 없기에 다른 사람의 생명을 앗은 흉악범이라 할지라도 침해당할 수 없는 인권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도 다른 사람의 생명을 앗을 권리는 이 세상의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사형제도는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또 사형제도가 실행되어 흉악범을 사형시킨다면 다시는 흉악범이 생기지 않을까? 아니다. 연쇄살인을 하고 사형선고를 받고 죽어버리면 그만이라는 막장생각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오히려 흉악범이 더 늘지 않을까? 사실 사형제도가 있다고 흉악범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사형제도가 폐지된 국가에서 흉악범이 줄어들고 있다는 연구보고도 있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토대로 단순히 사형제도를 폐지한다고 살인사건을 비롯한 흉악한 범죄가 줄어든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사형제도를 폐지한 국가는 그러한 범죄를 막기 위한 사회적 제도를 만들고 교육과 언론을 통해 건전한 문화와 윤리의식 고양에 더욱 힘을 쓰고 있기에 흉악한 범죄가 줄어든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사형제도가 살인과 같은 흉악한 범죄를 막는 해결책이 아니라 사람들의 심성을 올바르게 이끄는 것이 흉악한 범죄를 줄이는 길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흉악범을 사형시켜도 우리 사회에 흉악한 범죄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사실 흉악한 범죄에 대한 책임은 범행을 저지른 당사자 개인에 있다. 하지만 개인의 책임과 더불어 왜곡된 사회적 현실이 이러한 범죄를 발생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사형제도의 존치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사형제도의 존치 여부보다 사실은 연쇄살인과 같은 흉악범죄가 발생하지 않는 사회를 꿈꾸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형제도에 대한 어느 정도의 합일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사형제도의 존치 여부에 힘과 정력을 다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를 범죄 없는 사회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힘을 합쳐야 한다. 우리들이 자라나는 세대들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아름다운 심성을 갖도록 사회적 환경을 가꾸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 흉악범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유일의 길이다. 그리고 흉악범을 사형에 처함으로써 사회적 보복을 행하기보다 일생을 통해 자신이 저지른 죄악을 진심으로 참회하고 보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더 아름다운 세상, 더 문화적인 세상을 가꾸어 가는 길이다.

대구가톨릭대 김명현 교수(신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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