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동서원·예연서원…산자락 곳곳 충의·절개 오롯이
입춘이 지나자 봄이 성큼 다가왔다. 따스한 햇살 속에 비슬산도 옷을 갈아입을 준비를 하고 있다.
계곡 얼음 밑에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정겹고 힘차다. 개울 양지에는 버들강아지가 고개를 내민다. 비슬산 자락에 있는 크고 작은 서원들도 봄 준비가 한창이다. 구지의 '도동서원', 유가의 '예연 서원', 화원의 '인흥서원', 가창의 '녹동서원'…, 비슬산에는 '경세제민'(經世濟民'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함) '국난극복'(國難克服)에 앞장선 선비의 향기가 오롯이 배어 있다.
◆김굉필 선생의 도동서원(道東書院)=비슬산 남서기슭, 낙동강이 맞닿은 구지면 도동리에는 잘 정비된 모습의 서원이 있다. 한훤당(寒喧堂) 김굉필(金宏弼'1454~1504)선생을 모신 도동서원이다.
서원 앞에는 400년 된 은행나무가 수문장처럼 버티고 있다. 오른쪽으로는 옛 선비들의 곧은 절개를 상징하는 대숲이 있고 왼쪽 숲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즐비하다. 계단을 지나 수월루(水月樓)에 오르면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과 넓은 고령 개진 들판이 내려다보인다. 서원을 들어오려면 환주문(喚主門)을 지나야 하는데 입구가 무척 좁고 낮다. 자연스레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고 들도록 했기 때문이다. 환주란 주인을 부른다는 뜻으로 마음을 수양하는 사람이 자기 마음을 향해 '주인은 깨어 있는가' 하고 반문한다는 뜻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강당인 중정당(中正堂)을 중심으로 거인재(居仁齋)와 거의재(居義齋)가 대칭적으로 서 있다. 뒤편 사당에는 한훤당과 한강(寒岡) 정구(鄭逑)가 함께 배향돼 있다. 사당 좌우 벽면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눈 쌓인 노송 사이로 둥근달이 떠 있는(雪老長松) 그림과 강나루에 배를 풀고 달빛을 즐기는(江心月日舟) 그림이다. 이는 서원을 지을 때 그린 벽화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 모셔진 한훤당은 한양에서 태어났으나 증조부가 현풍 지동(池洞)에 은거하면서 이곳을 드나들며 비슬산과 인연이 닿았다. 그는 '무오사화'에 김종직의 일파로 몰려 유배된 후 '갑자사화' 때 죽임을 당했다. 이때 나이가 51세. 그림도 잘 그렸으며 성리학의 대가로 조광조'이정곤'김인국 같은 학자를 문하에 두었다. 사후 중종반정으로 우의정으로 추증되고 광해군 2년 조선 오현(五賢) 중 수장(首長)으로 모셔졌다. 그가 죽은 뒤 64년(1568년) 만에 비슬산 자락 유가면 쌍계리에 서원이 세워졌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지금 자리로 옮겼다. 1607년 도동서원으로 사액(賜額'왕으로부터 편액'서적'토지'노비 등을 하사받아 그 권위를 인정받음)됐다. 도동서원은 강당과 사당, 담장이 보물 제350호로 지정돼 있으며 특히 담장이 아름답고 서당 서쪽 담장에는 제문을 태우는 감을 설치하는 등 독특한 구조가 눈에 띈다.
우순자 문화관광해설사는 "도동서원은 1년에 4번은 찾아야 제대로 봤다고 할 수 있다"며 "봄철인 4, 5월에는 사당 앞 모란꽃이 아름답고 7월에는 배롱나무 꽃이 좋으며 가을에는 은행잎, 겨울에는 눈 내린 낙동강을 보며 한 해 동안 채웠던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서원에는 강당 터가 학(鶴)의 모양인데 양쪽 날개를 누르지 않으면 학이 요동쳐 집이 온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신령의 말에 따라 '거인재'와 '거의재'를 건축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충의정신이 깃든 예연서원(禮淵書院)=달창저수지에서 왼쪽으로 들어가면 가태리가 있다. 이곳 사람들은 '구례마을"이라고 부른다. 이 마을에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1552~1617)와 존재(存齋) 곽준(1551~1597)을 모신 예연서원이 있다. 마을에 들어서면 수령 400년 된 큰 느티나무가 있는데 '곽재우 나무'라고 부른다. 나무를 이웃하고 누각에 '신도비' 2개가 나란히 세워져 있는데 '땀 나는 신도비'다. 곽재우'곽준 두분 선생을 기렸는데 국가적으로 어려울 일이 있을 때마다 비석에서 땀이 났다. 한일강제병탄, 6'25전쟁과 근래 들어 4'19와 5'16 때도 땀이 흘렀다고 전한다. 마을 맨 위쪽에 서원이 있다.
서원은 임진왜란'정유재란 때 의병활동으로 나라를 구한 두 분 의병장을 추모하기 위해 광해군 10년(1618년) 인근 솔레마을(현풍면 대리)에 있던 충현사를 숙종 3년 '예연서원'으로 사액받아 현 위치로 옮겼다. 그러나 6'25때 장판각과 전사청을 제외한 건물 모두가 불 타 최근 2차례에 걸쳐 복원했다. 이곳에 모셔진 의병장 망우당은 홍의장군으로 알려져 있으며 임란 당시 신출귀몰한 전술로 왜적을 크게 무찔러 충익공(忠翼公)에 제수됐다.
존재는 문신(文臣)으로 의병장 김면(金沔)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임진왜란'정유재란 때 공을 세웠다. 정유재란 당시 선생은 함양의 황석산성에서 전사했는데 이때 두 아들과 딸, 며느리 등 일가족 모두가 순절했다. 선생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받쳐 '충'(忠), 아들은 아버지를 호위하다 죽어 '효'(孝), 딸과 며느리는 정절을 지켜 자결한 '열'(烈)로 한 집안에서 충'효'열이 모두 나온 '일문삼강'(一門三綱)으로 불린다. 소레마을 앞 12정려각에 모셔져 있다. 예연서원은 대구시 기념물 11호로 지정돼 있으며 장판각에 보관된 '망우당선생문집책판' '창의록책판' '존재선생실기책판' 등은 유형문화재로 각각 지정돼 있다.
이외에도 비슬산 자락에는 명심보감(明心寶鑑) 출판으로 유명한 화원의 '인흥서원(仁興書院)', 귀화한 왜장 모하당(慕夏堂) 김충선(金忠善)을 모신 가창의 '녹동서원', 청백리 곽안방(郭安邦) 선생의 이양서원(尼陽書院,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의 절의(節義)정신이 숨어있는 청도 이서의 자계서원(紫溪書院) 등이 있다.
비슬산 일대 고을'마을마다 서원을 중심으로 유교문화가 꽃을 피웠고 수많은 충신(忠臣) 효자(孝子) 열부(烈婦)를 탄생시켜 나라와 지역을 이끌었다. 모두 비슬산의 상서로운 기운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박용우기자 ywpark@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한덕수 "24일 오후 9시, 한미 2+2 통상협의…초당적 협의 부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