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데스티네이션'(Destination·2000)처럼 미래를 볼 수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 무서울 수도 있겠지만 좋은 점이 더 많을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의 경제 주체들은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제주체가 불확실한 미래와 관련된 선택을 하면 그 선택의 결과로서 일정 정도의 위험을 부담하게 된다. 위험 정도에 따라 그 크기가 달라지는 상품을 조건부상품이라고 한다.
조건부상품을 간단하게 설명할 때 '돈 놓고 돈 먹기' 게임을 많이 이용한다. 보통은 간장종지 3개를 엎어 놓고 그 중 하나에 물건을 놓고 맞춰보는 게임이다. 만약 1만원을 걸어서 물건이 있는 종지를 맞췄다면 걸어놓은 돈만큼 1만원을 더 얹어 2만원을 받을 것이고, 만약 찾지 못하는 경우는 1만원을 잃게 된다고 치자. 이 경우 당신은 이 게임에 참여할 것인가? 만약 참여한다면, 이 게임이 공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게임은 공정한 게임이 아니므로 과감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물건이 있는 간장 종지를 맞출 수 있는 확률은 3분의 1, 맞추지 못할 확률이 3분의 2이다.(물론 이 확률도 속임수가 없다는 가정 하에서만 가능하다) 기대치를 구해보자. A가 10만원을 가지고 있다면 A가 선택할 수 있는 경우는 '판돈을 한 푼도 걸지 않는다'에서 '10만원 모두 다 건다'까지의 가능성이 있다. 여러 가지 가능성 중 3만원을 건다고 예상해 보면, 맞췄을 경우의 기대치(1/3×13만원)와 맞추지 못했을 경우의 기대치(2/3×7만원)를 더하면 9만원이 된다. 이 경우 게임에 참여해 봤자 지금 가지고 있는 돈 10만원보다 낮은 액수인 9만원이 된다. 10만원을 전부 걸었을 때의 기대치는 6만6천667원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게임은 공정하지 못하므로 참여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소기업들에 큰 피해를 안겼던 통화옵션 상품인 키코(KIKO)가 처음부터 기업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만들어져 금융공학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키코는 환율이 약정기간 사이 일정 폭 안에서 움직이면 기업이 환차익을 올릴 수 있고, 만약 환율이 기준치 미만으로 내려갈 경우 계약은 자동 해지된다. 하지만 환율이 상한선 위로 올라가면 기업이 계약금액의 2~3배만큼의 달러를 구입해 시장 환율보다 낮은 값으로 은행에 팔아야 하므로 거액의 환차손을 입게 된다. 지난해 환율이 급등하면서 키코에 가입한 수출 중소기업들이 큰 손해를 입었다. 사업은 잘해서 흑자를 냈는데, 키코 손실 때문에 부도가 나는 사태까지 발생한 것이다. 최근 피해 기업들이 키코 계약이 부당하다며 판매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키코 상품을 분석한 금융공학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키코 가입 당시 환율, 변동성, 이자율을 고려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옵션 가격 산정 모형으로 분석한 결과 지나치게 은행에 유리하게 설계돼 있었다고 한다. 어느 기업의 키코 가입 조건은 환율상승 때 가입 금액의 2배를 은행에 지급해야 하는 것이지만, 공정한 상품이라면 0.7~1.2배만 지급하면 된다고 한다.
물론 키코의 경우는 '돈 놓고 돈 먹기'식 게임처럼 쉽게 확률을 계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계약 당사자 한쪽에 지나치게 불리하게 설계되어 있었고 상식적인 수수료 수준을 훨씬 넘는 이득을 은행에게 가져다 준 키코 사태는 정말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해결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박경원(대구과학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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