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 희망을 찾아서

입력 2009-02-05 11:02:22

나눔캠페인 모금 사상 최고 달성, 절망 속에서 희망가치는 더 빛나

2009년 2월, 대한민국엔 '절망'이란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경제위기로 직장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장사가 안 돼 가게 문을 닫는 자영업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10여 년 전 외환위기 때보다 상황이 더 나쁘다"는 아우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엔 절망만 가득할 뿐이다.

절망은 불안과 어김없이 같이 붙어다니는 법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답답한 현실 탓에 불안은 더욱 커지고, 연쇄적으로 절망은 증폭되는 것이다. 한 줄기 빛이라도 보인다면 그나마 마음을 다잡을 수 있겠지만 사방을 둘러봐도 어둠뿐이다.

여기에다 인간에 대한 불신과 회의가 절망'불안을 배가시킨다.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엽기적 범죄 행각은 물론 검거 후 그의 언행에 "어쩌다 인간이 이 지경까지…"란 탄식을 쏟아낼 수밖에 없다. 뉘우치는 기색은 별로 없이 잘 먹고 잘 자는 그의 행동에 분노를 넘어 인간성의 실종을 보는 것 같아 참담하기까지 하다. 특히나 끔찍한 범죄자의 모습을 선량한 얼굴로 포장한 강의 행각은 사람들 사이에 불신이란 '나쁜 바이러스'를 퍼뜨렸다. 친절을 친절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는 사회는 결국 불행해질 수밖에 없고 그런 불신들이 쌓여 불안과 절망을 양산하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절망이 넘쳐날수록 우리는 希望(희망)이란 '동반자'를 찾아야 한다. "이렇게 상황이 나쁜데 어디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느냐"는 얘기도 나오지만 그럴수록 희망을 찾고, 거기에 기대야 한다. 어둠이 짙을수록 촛불이 더 빛나는 것처럼 절망이 봇물을 이룰수록 희망의 가치와 효용성은 더 커지게 마련이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니 행복하다"는 말이 있다. 이 이야기에 희망을 대입하면 이렇게 바꿀 수 있다. "희망이 넘쳐 희망을 갖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찾으니 희망이 보인다."

경제란 존재는 침체와 호황을 반복하는데다 국민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며 노력하고 있는 만큼 머지않아 회복 조짐을 보일 것이란 작은 희망을 가져본다. 나아가 아직까지 이 세상엔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더욱 큰 희망을 갖게 하는 지렛대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난해 12월부터 지난달 30일까지 '2009 나눔캠페인' 모금액을 잠정집계한 결과 2천63억 원이 모여 역대 최고 모금액을 기록했다. 경북은 목표치를 넘었고 경기가 유달리 나쁜 대구 역시 96.3%의 달성률을 나타냈다. 어려운 시기에도 '나눔으로 행복한 사회를 위한다'는 취지에 동참한 사람들이 많은 덕분이다. 또한, 노동시간과 임금을 줄이는 대신 고용을 늘리는 잡 쉐어링(Job-sharing'일자리 나누기)에 동참하는 기업들도 느는 추세다. 여기에 비판도 없지 않지만 일부에 갈 고통을 구성원 모두가 조금씩 나눈다는 측면에선 분명 환영할 일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을 취재하면서 만난 어느 야학 젊은 교사의 말이 요즘 자주 머리에 떠오른다. 대학 4학년 때부터 야학 교사를 시작해 현직 교사로 7년째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그에게 "서른 살 청년이면 데이트도 하고 친구들과 술도 마셔야 할 텐데 어렵지 않으냐"고 물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2시간 동안 수업하려면 솔직히 힘들지요. 어떨 때엔 학교에 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땡땡이를 치고' 싶은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저를 기다리고 계실 아주머니, 아저씨들의 얼굴이 떠올라 야학에 오게 되지요.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엔 마음이 뿌듯해지고 밤 하늘의 별이 참 아름답게 보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각박하다지만 그래도 믿을 건 사람이다.

마침 어제가 立春(입춘)이었다. 동장군이 물러가지 않은 겨울의 말미에 봄이 시작된다는 절기를 끼워놓은 선조의 지혜를 되새겨보고 싶다. 비록 지금 이 세상엔 삭풍이 불지만 봄이 멀지 않으리란 희망을 가슴에 담으려는 뜻이리라. 경제는 어렵지만 사랑하는 가족에게서, 이웃을 위한 베풂에서, 아니면 자아계발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아무리 힘든 시절, 세상이더라도 우리 마음에 희망이란 싹만 있다면 꽃피는 봄은 그리 멀지 않다.

이대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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