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스런 불황 탓이리라. '서민의 술' 막걸리가 술자리에서 큰 인기다. 호주머니엔 찬 바람만 횅하니 불고 누구랄 것 없이 어깨가 축 처지는 요즘, 두부김치나 파전 그도 아니면 소금 몇 알로도 충분한 막걸리의 '미덕'이 한껏 빛을 발하고 있는 셈이다. 아닌 게 아니라 지갑엔 몇 푼 없는데 배는 출출하고 한잔 술 생각으로 목구멍이 마냥 간질거릴 때 술꾼들은 흔히 막걸리를 찾는다. 적은 돈으로 얼큰하게 취할 수 있고 배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많고 많은 술 중에서 우리 한국인에게 막걸리만큼 푸근한 술이 있을까. 기분 좋아도 한잔, 나빠도 한잔, 슬퍼도 한잔…. 그렇게 막걸리는 우리네 삶 속에서 희로애락을 함께 해주는 벗이 되어왔다. 대다수가 가난했던 지난 시절, 막걸리는 눈물 어린 '밥' 역할도 했다.
끼니 잇기조차 어려울 만큼 찢어지게 가난했던 집안에서 소년은 매일같이 술도가에 가서 술지게미를 사왔다. 가족들은 밥 대신 하루 두 끼를 술지게미로 배를 채울 때가 많았고, 소년의 앳된 얼굴은 늘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일대기인 '신화는 없다'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오랜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그 많은 술자리에서 누구보다 강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의 그 술지게미 훈련 덕분이라며 가난이 자신에게 물려준 하나의 유산이라고도 했다.
일본에서 '막걸리 바람'이 예사롭지 않은 모양이다. 서울탁주협회 경우 본격적으로 대일 수출을 시작한 지난해의 수출량이 8천만 원에 그쳤으나 최근 추세를 볼 때 올해는 연간 최대 65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한다. 그냥 바람이 아니라 열풍이다.
우리 국내서도 일본 술 '사케 바람'이 꽤나 뜨겁다. 관세청에 따르면 사케 수입량이 작년 1천866톤으로 전년 대비 44.2%나 늘었고, 수입액은 647만3천 달러로 64% 정도의 가파른 증가세를 보인다는거다. 아직은 막걸리 수출량이 훨씬 많지만 사케가 막걸리보다 비싼 탓에 벌어들이는 수출액보다 수입액 규모가 훨씬 크다. 우리네 수입 술 취향이 위스키에서 와인 열풍을 지나 조만간 사케로 넘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나저나 입춘(2월 4일)이 코앞에 바짝 다가온다. 아무래도 올 봄은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일 것 같다. 한잔 막걸리로 마음을 달래려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지지 않을까.
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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