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를 이루다]상감입사장 김용운씨

입력 2009-01-29 08:34:48

일본서 고액에 기술전수 제의 "거절했죠"

20여년간 자신의 곁을 묵묵히 지켜온 제자에게 스승이 남긴 유품은 정 한 자루였다. 목수일 가운데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것이 대패질이듯 금속장에게 정은 생명이고 정을 제대로 다룰 줄 알아야 명장의 반열에 들 수 있다는 스승의 마지막 가르침이었다.

1973년 24세 때 스승 송재환(1994년 작고)을 만나 상감입사를 배우기 시작해 지금까지 한길만을 걷고 있는 김용운(59)씨. 그는 사라져가는 상감입사 금속공예 전통을 잇고 있는 상감입사장이다. 상감입사 금속공예는 청동 등의 금속 표면에 홈을 파고 금 은 등 다른 금속을 박아 넣는 기법을 말한다. 청동기시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해 고려시대에 매우 높은 수준으로 발달했지만 조선시대 들어 금속 표면에 실같이 뽑아낸 다른 금속을 붙여서 문양을 만드는 기법이 성행하면서 점차 쇠퇴를 맞았다.

김씨는 더디고 힘들더라도 고려시대 전통 상감입사를 고수하고 있다. 그가 만드는 작품은 항아리'향로'향합부터 현대적 감각의 각종 화병이나 주전자 등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상감입사 금속공예 작품은 여러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먼저 상감입사할 기물(항아리'향로 등)을 만들어야 한다. 예전에는 기물을 주문해서 사용했지만 요즘에는 직접 제작한다. 김씨는 "과거 기물 만드는 사람들이 귀금속 분야로 대거 전업을 했죠. 가장 큰 원인은 기물을 만들어 놔도 팔리지 않았기 때문이죠. 10여년 전부터 전통 문화의 소중함이 부각되면서 기물 만드는 사람을 찾으려는 사회적 관심이 일었지만 그때는 이미 맥이 끊어진 상태였고, 지금은 기물을 제대로 만드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어서 궁여지책으로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기물을 완성하면 기물 표면에 상감입사할 문양을 그린 뒤 정을 망치로 때려 표면에 홈을 내면서 조각을 한다. 이 공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 다루는 솜씨다. 정 날을 어떤 모양으로 갈아서 어떤 각도로 잡고 홈을 파느냐에 따라 완성도 높은 작품의 초안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0.3~0.5㎜ 정도의 금속실을 만들면 파진 홈에 실을 넣는 작업을 해야 한다. 망치로 두드려 홈에 넣은 실이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상감입사가 끝나면 줄이나 사포로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은 뒤 빛깔을 내면 작품이 완성된다. 항아리 하나에 상감입사만 하는 데 보통 한달정도 소요된다.

김씨가 한창 상감입사를 배울 당시 동네 사람들은 그를 정신 나간 청년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하루 종일 상감입사만 생각했습니다. 하루 한끼만 먹는 날도 많았고 세수도 제대로 못하고 지냈으니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감입사에 미쳤던 것 같습니다." 그는 열정적인 젊은 시절이 없었으면 지금의 자신도 없었다고 말한다.

몇년 전 김씨는 돈을 많이 주겠으니 상감입사 금속공예를 가르쳐 달라는 제의를 일본 사람으로부터 받았지만 단호히 거절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상감입사 금속공예 기술의 해외 유출을 걱정해서였다. "중국 일본에는 금속에 상감입사를 하는 것이 없습니다. 만일 금속 상감입사가 일본으로 넘어가면 단기간에 우리나라가 따라 잡을 수 없는 수준까지 발전시켜 놓을 것이 분명합니다. 금속 상감입사는 더욱 발전시켜야 할 우리 기술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우리나라 상감입사 금속공예는 겨우 명맥만 유지되고 있다. 전국에서 금속 상감입사를 하는 사람은 3, 4명에 불과하다. 김씨의 뒤는 아들과 딸이 잇고 있다. 최소 10년 정도 배워야 금속 상감입사에 눈을 뜨게 되는데 그동안 배우러 온 사람들이 몇년을 넘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고려시대에 이르러 최고 수준에 도달했던 우리나라 공예기술이 현대까지 이어지지 못한 것은 장인이 스스로 터득한 기술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작업하는 도중 중요한 기법이나 공정은 따로 기록해 모아 뒀다"고 했다.

김씨는 수성구 두산동 들안길 입구에 작업실 겸 전시관인 '천미사'를 운영 중이지만 작품 판매에는 별 관심이 없다. 정해진 작품 가격도 없고 노력한 만큼 대가를 요구하기도 쉽지 않아서다. 가끔 지인들이 작품을 팔라고 하면 알아서 돈을 내고 가져가라고 하는 것이 전부다.

김씨는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일요일 하루만 빼고 매일 작업실에서 지낸다. 웬만한 일이 아니면 작업실을 떠나지 않고 상감입사에만 매달리고 있다. 현재 그는 상감입사 위에 또 상감입사를 하는 기법을 개발 중이다. 상감입사는 주로 청동 기물에 하다 익숙해지면 재질이 무른 은 기물 위에 한다. 그보다 더 높은 경지가 재상감입사다.

2년 후에는 개인전도 열 계획이다. 상감입사 공예품만 100여점을 선보이는 대규모 전시로 3년 전부터 준비해 오고 있다. "마지막 개인전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력이 점점 나빠져 예전에 비해 작품을 반도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교하고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이라 5년 이상 더 작업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는 돋보기를 끼고 몇시간 동안 작업을 한 뒤 작업실에서 나오면 초점이 맞지 않아 한동안 다른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