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도심 재창조] 교통체계 이렇게 바꾸자 <상>보행권
◆도심에는 사람만 다닐 수 있게
이런 상상을 해보자. 1차순환선(동인네거리~삼덕네거리~계산오거리~태평네거리) 내에서는 사람만 다닐 수 있다. 불법 주정차도 없고, 차량 경적소리도 사라지고, 온전히 사람만을 위한 거리. 이 실험은 과연 불가능할까.
전문가들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보행자 중심의 교통정책을 공간과 시간적인 제한으로 나눈다. 우선 공간적으로 보행자만 다닐 수 있는 '보행자 전용구역'은 현재 대구 도심에서 대우빌딩~대구백화점~중앙치안센터(930m)뿐이다. 이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 보행자뿐 아니라 자전거, 버스, 택시 등 대중교통과 구급차, 우편 차량, 경찰차 등 특수차량 통행만 허용되는 '보행자 우선구역'도 있다. 올해 말 조성 예정인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가 비슷한 예다. 또 보행자몰(보행자만 있는 광장이나 공간), 속도조절 구역도 보행권 우선 정책 중 하나다.
도심 상가에 물건을 실어 나르는 차량 등으로 공간적인 제한이 어려운 경우에는 오전, 오후 시간대별로 나눠 통제할 수도 있다. 서울 명동, 인사동의 보행자 우선 정책이다. 이 밖에도 과속방지턱, 찻길 축소(도로 다이어트), 지그재그 도로로 인한 속도 제한 등도 보행권을 우선시하는 통행 정책으로 거론되고 있다.
계명대 도시공학과 김철수 교수는 "대구의 중심 동성로(중앙네거리~공평네거리~봉산육거리~반월당네거리)에는 보행자가 전국에서도 가장 많은 수준으로 1차순환선 내에서 보행권 우선 정책 실현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라며 "외국처럼 버스, 지하철이 잘 발달돼 있고 보행환경이 매력적으로 조성되면 '사람을 위한 도심' 실험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대중교통전용지구는 보행악?
오는 2월 착공, 연말 준공 예정인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대구역~반월당네거리 1.05㎞)는 인근 이면도로 교통량을 크게 늘릴 공산이 크다. 사업 주체인 대구시는 대중교통전용지구 완료 이후 중앙로 통행 차량들이 인근 이면도로, 골목 등으로 분산되는 데 대해 어떤 조사도 하지 않고 있다. '승용차 없는 거리' 하나를 만들기 위해 인근을 오히려 '보행 지옥'으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중앙로 인근에 현대백화점까지 들어오면 약전골목, 종로골목, 동성로 일대 골목은 우회하는 차량들로 미어터질 확률이 크다.
계명대 교통공학과 김기혁 교수는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는 1992년 처음 나온 이야기로 실행되기까지 16년이나 걸릴 정도로 대구 도심에서 사람을 위한 배려는 취약했다"며 "중앙로 사업을 성공시키려면 '걷기 좋은 보행천국'의 최대 실패작인 중구 약전골목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충분한 기초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 조성사업 완료 이후 인근 도로를 일방통행으로 지정하거나 차량 통행을 제한하는 정책이 추진되지 않을 경우 부작용이 심각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김철수 교수는 "우리나라는 도로의 일방통행 정책에 아주 소극적인데 교차 통행만 줄여도 보행환경은 크게 개선될 수 있다"며 "거리의 쾌적함, 보도 폭, 보행자 수, 보행 서비스 수준, 차량 동선 및 우회도로 파악 등에 대한 조사를 충분히 한 뒤 인근 이면도로와 골목의 작업 차량, 우회 차량에 대한 통행 제한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보행권을 위한 과제
영남대 도시공학과 윤대식 교수는 최근의 도심 개발이 TOD(Transit Oriented Development) 형태로 나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중교통 지향형 도시개발(TOD)'은 지하철, 버스승강장 등으로부터 반경 600여m 이내의 보행·자전거 통행 거리에 상업이나 기업 중심지를 형성하고 그 외곽에 공지와 주택을 넣음으로써 승용차 없이 대중교통, 보행, 자전거만으로 통행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토지개발 형태를 뜻한다.
윤 교수는 "현재 대구 도심은 대중교통 접근성이 아주 좋아 어느 정도 TOD가 형성돼 있는 상태"라며 "하지만 도심 재생을 위해서는 보행친화적인 가로망이 형성돼야 하며 차도 폭을 좁히고 인도 폭을 넓히는 로드 다이어트(Road Diet)를 확대시행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도심을 즐기면서 다닐 수 있는 보행네트워크 구성도 시급하다. 보행네트워크란 점(공원)-선(도로, 골목)-면(광장)이 연속적으로 이어진 형태로 공원, 광장, 학교 운동장, 상가, 백화점 등 보행집중장소가 매력적인 길과 이어져 '걷고 싶은 거리'로 만드는 것.
대구대 도시·지역계획학과 홍경구 교수는 "대구역 앞, 반월당네거리, 중앙네거리 등 보행량이 많은 곳은 평면 횡단이 가능토록 하고 도심 곳곳에 숨어 있는 보행네트워크 재료를 발굴해 잇는다면 전국 최고 수준의 매력적인 공간이 될 것"이라며 "최근의 도심 재생은 관광과 문화가 결합된 형태로 얼마나 쉽게 걷고, 얼마나 많이 보고 즐길 수 있느냐를 전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김재경·서상현기자 사진·이채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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