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 경시대회라면 수학이나 물리, 화학 등을 떠올리기 쉽다. 이들 분야는 모두 자연계 학생들을 위한 것. 자연계 학생들에겐 한 해 수십개의 경시대회가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인문계 학생들이 도전할 수 있는 경시대회도 있다. 외국어, 법, 경제, 증권 등이다. 특히 전국투자자교육협의회(투교협)이 주최하는 '전국 고교 증권 경시대회'에 관심을 가져볼만 하다. 이 대회는 응시자 대비 수상자 비율이 4%가 넘는데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어 꼼꼼히 준비한다면 지방 학생들도 수상의 영예를 안을 수 있다.
◆'지역 성적우수학교상' 받은 영남고
영남고는 지난해 12월 '제6회 전국 고교 증권 경시대회' 단체부문에서 3등에 해당하는 '지역 성적우수학교상'을 받았다. 이 학교는 대회 1개월 전인 11월부터 본격 준비에 들어갔다. 학교 선택 과목인 '경제'를 배우는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참가자를 모집한 것. 총 50명의 신청을 받아 학생들의 의지와 성적 등을 심사해 27명을 선발했다. 김철훈, 주기훈 교사의 진두지휘 아래 증권대회 준비반을 만든 것이다.
이들은 매주 두 차례 자율학습 시간을 이용해 '특별 수업'을 가졌다. 주 교사는 "경제 교과서와 함께 투교협에서 배부하는 표준교재, 5년 동안의 기출문제를 중심으로 핵심을 설명하고 관련 내용들을 정리해줬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수업만으론 부족한 감이 있어 개인적인 준비도 충실히 했다. 강우현군은 학교도서관에서 경제나 증권 관련 서적을 5, 6권 빌려 쉬는 시간이나 점심 시간을 이용해 틈틈히 읽었다. 또 최신 경제용어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경제신문에서 발간하는 고교생을 위한 주간지도 꼼꼼히 공부했다. 박원석군도 경제 관련 동영상 강의를 시청하는 등 매일 2시간 정도를 경시대회 준비에 투자했다.
학생들에겐 수상의 기쁨도 있지만 대회 준비를 통해 경제에 눈을 뜬 것이 가장 큰 소득이다. 김태준군은 "평소 경제에 관심이 있고 장차 투자도 해야 하기 때문에 한 번 도전했다"며 "준비 과정을 통해 이젠 경제 흐름이나 어려운 용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일부 학생들은 자칭 '투자전문가'가 돼 조언자 역할도 한다. 박 군은 "2007년 초에 브릭스펀드에 투자했다 최근 금융위기로 40% 정도 손실을 본 어머니가 투자를 그만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 때 2~3년 후엔 꼭 오를 것이라며 투자를 계속 하시라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주 교사는 "학생들이 대회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면서 열정도 생기고 단순한 이론공부가 아닌, 실물 경제 흐름을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또 대부분 대입 때 경제 관련 학과에 지망하려는 학생들이기 때문에 미리 내용이 어려운 증권을 공부해 놓으면 도움이 된다는 것.
◆체계적인 준비 필요
학생들이 증권 경시대회에 도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실적' 때문이다. 수상할 경우 대입 수시전형에서 경제관련 학과 진학 때 가산점을 받거나 유리할 수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대입 수시에 도전을 많이 하는 특목고 학생들이 몰린다. 매년 수상자나 수상 학교도 특목고 학생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더욱이 서울 등 수도권에는 이를 대비한 학원들도 적잖아 지방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긴 쉽지 않는 것이 현실. 또 일반계 고교 학생들은 '입시'라는 압박감과 증권 등 경제 관련 교과목이 없는 이유로 관심도가 낮은 것도 원인이다.
실제로 학교에선 경시대회가 공고되면 부랴부랴 학생들을 모집해 공부시키거나 개별적으로 맡기는 경우가 많다. 대구제일여자정보고는 지난 11월 이 대회에 40여명의 학생들이 참가, 대구경북의 참가학교 중 최다 인원을 내보낸 공로로 '지역참여우수학교상'을 받았다. 금융분야 특성화고로 지정돼 회계금융과 학생들을 대거 참가시킬 수 있었던 것. 정현철 교사는 "참가 학생은 많았으나 준비 기간이 1주일 정도로 너무 촉박해 투교협 표준교재 정도로만 공부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 학교는 올해 '증권동아리'를 별도로 결성해 체계적인 준비를 할 예정이다.
정화여고도 이 대회에 참가했지만 준비 과정에서 체계적인 수업을 못하고 희망 학생을 대상으로 개념을 정리한 자료를 나눠준 정도다. 박상은 교사는 "기출 문제를 통해 어려운 개념이나 용어를 용어사전을 통해 정리해주고 파생되는 개념을 자료로 찾아 나눠줬는데 그 것만으론 부족한 점이 많다"고 했다.
교사들은 지방 일반계 고교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선 학교에서 전략적으로 체계적인 교육과 지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박 교사는 "특목고처럼 방과후 학교에 증권 등 경제 관련 과목을 만들거나 별도 동아리를 결성해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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