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백두를 가다] 亭子의 보고…확인된 것만 98개

입력 2009-01-09 06:00:00

▲ 운곡천 사미정계곡에 위치한 정자 사미정. 명정승 채제공이 현판을 썼다.
▲ 운곡천 사미정계곡에 위치한 정자 사미정. 명정승 채제공이 현판을 썼다.

봉화는 정자의 보고다. 봉화의 정자 수는 현재 확인된 곳만 98개이며 사라진 정자까지 합하면 170여 곳에 달한다. 봉화는 전국의 기초단체 중 정자가 가장 많은 곳이다.

봉화에 이렇게 정자가 많은 이유는 뭘까?

고산준령의 험준한 산세, 수려한 경관을 품고 흐르는 낙동강이라는 천혜의 지리적 여건을 가져서다. 또 봉화 땅 대부분이 조선시대까지 안동 땅이어서 경북 북부지역 유림들이 봉화로 옮겨온 것과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선비들의 은거도 또 다른 이유다.

정민호 학예연구사는 "안동 권씨, 광산 김씨, 무안 박씨, 풍산 김씨, 진성 이씨, 진주 강씨, 남양 홍씨 등이 대표적인 문중이다. 병자호란 후 청나라 오랑캐를 섬길 수 없다며 봉화 땅에 이주한 이른바 '태백오현(두곡 홍우정, 손우당 홍석, 잠은 강흡, 각금당 심장세, 포옹 정양)도 정자를 짓고 벗하며 학문을 수양했다"고 말했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정자가 있으니 공부보다는 풍류에 더 신경 쓰지 않았을까? 정 연구사는 다른 지방의 정자는 개방적인 건축구조로 풍류적 성격이 짙은 게 많지만 봉화의 정자는 폐쇄적인 구조에다 온돌방을 갖춰 추모, 학문 등이 그 건립 목적이라고 했다.

봉화 정자의 자랑은 현판 글씨. 퇴계 이황을 비롯해 전서의 대가 미수 허목, 조선 최고의 서예가인 석봉 한호, 추사체로 한국 서예사에 한 획을 그은 김정희, 정조 때의 명정승 채제공 등이 현판에 글씨를 남겼다. 정 연구사는 "봉화의 정자만 탐방해도 의미 있는 역사공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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