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근로자 '빈손 퇴사' 는다

입력 2009-01-07 09:15:32

"며칠 쉬라고 해놓고는 밀린 월급 120만원을 떼먹고 공장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저한테는 큰돈입니다. 돈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없을까요?"

"3년을 근무했는데 사장님이 갑자기 폐업신고를 했습니다. 퇴직금을 받을 길이 없습니다."

대구시내 노무사 사무실마다 '임금·퇴직금을 받아달라'는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 상당수 기업들이 정부가 지원하는 고용유지지원금을 통해 노동자들의 임금과 일자리를 지켜주고 있지만 작은 규모의 제조업체나 도소매업체는 휴업보다는 폐업을 선택, 노동자들의 임금과 퇴직금 청산을 못해준 채 업체문을 닫는 사례가 최근 급격히 늘고 있는 것이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정부가 지원하는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하는 기업이 대구경북에서 지난달에만 1천200여곳을 넘어선 가운데 휴업 태풍이 결국 폐업 도미노로 이어지고 빈손 퇴직자를 양산할 우려를 낳고 있다.

대구경북에서는 지난해 9천곳의 사업장에서 2만1천96명의 노동자가 월급을 제때 받지 못하면서 체임이 발생했다. 지난해는 그 전해(8천396곳·1만7천186명)보다 노동자 숫자 기준으로 22.7%나 체임 피해자가 늘었다. 하반기 들어 실물 경기가 급속하게 얼어붙으면서 체임이 급증한 것으로 분석된다.

사용자가 임금 및 퇴직금을 못 주고 업체 문을 닫아버리는 사례가 늘면서 대구경북지역 체당금 지불 역시 지난해 크게 늘었다.

대구노동청 집계 결과, 지난해 232개 업체 노동자들에게 체당금이 지불됐다. 그 전해(217곳)와 비교하면 10% 가까이 늘었다.

대구 한빛공인노무사사무소 박찬민 사무장은 "체불임금에 대한 민원 제기가 최근 들어 20~30%나 늘었다. 부도가 나면서 임금을 못 챙겨주는 경우도 있지만 경영포기, 즉 자진폐업이 더 많아지고 있다. 사용자도 돈이 없는 상황에서 폐업을 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임금·퇴직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향후 대규모로 체당금을 신청할 가능성이 많다"고 했다.

노동청도 지난해 11월 대구경북에서 172곳에 불과하던 고용유지지원금 신청이 지난달 1천281곳으로 급증한 만큼 휴업의 장기화가 결국 폐업으로 이어지면서 '빈손 퇴직 근로자'가 크게 늘어날까 우려하고 있다.

지난달 대구경북에서 일자리를 잃어 실업급여를 받아간 사람들은 9천여명에 육박하면서 그 전달에 비해 꼭 2배 늘었다. 이미 실업 태풍이 본격화한 것이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 체당금=노동자가 기업 도산으로 인해 임금 등을 지급받지 못한 경우 임금채권보장기금에서 사업주를 대신해 임금과 퇴직금 일부를 주는 것. 밀려있는 전액을 주지는 못하고 통상적으로 3개월치 임금, 3년치 퇴직금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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