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로 읽는 한권]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입력 2009-01-07 06:00:00

우리가 이해하려는 중국의 근현대사는 바로 피와 눈물, 한과 분노, 좌절과 극복의 역사이다. 『영화로 이해하는 중국 근현대』 박완호 외 지음/르네상스/286p/1만2천원

영화를 보고나서 가끔씩 그 영화의 배경이 되는 특수한 시대적 상황에 대해 궁금해져 한동안 그것에 관련된 서적을 탐독하게되는 경우가 있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본 뒤 아일랜드 독립운동사를 뒤적거린다거나, '킹덤 오브 헤븐'을 본 뒤 십자군 원정사와 예루살렘 왕국사를 찾아보는 식이다. 그런 '관성형 독서'는 해당 영화의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나라의 역사에 관한 상식을 높여준다. 많은 훌륭한 영화가 한 나라나 민족이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있을 시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어쩌면 '배경 제대로 알기'는 영화감상 보다 더 경건해야할 일일 수도 있겠다.

'영화로 이해하는 중국 근현대'는 그런 의미에서 반가운 책이다. 책은 '인생', '북경자전거', '비정성시' 등 걸작 중화권 영화들을 화두로, 기쁜 일보다는 슬픈 일이 더 많았던 중국의 지난 세기를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아편전쟁, 신해혁명, 국공합작, 난징대학살, 문화대혁명, 천안문사태까지, 세계적인 중국 영화들을 만든 진짜 장본인인 '굴곡의 중국 근현대사'가 낱낱이 소개되는 것이다. 역사를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관련 영화를, 영화 팬들에게는 관련 역사 상식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이 책은 다양한 사람들의 책꽂이에 꽂힐 자격이 있어 보인다.

이 책의 3장은 영화 '난징 1937'과 그 배경이 되었던 난징대학살을 다루고 있다. 그 부분을 읽다보니 한 용감한 중국계 미국인의 아름다운 얼굴이 떠오른다. 아이리스 장은 지난 2004년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되기 전까지, 자신의 인생의 많은 부분을 난징대학살에 관련된 취재와 폭로, 집필에 바쳤다. 1997년 그녀의 책 '역사는 힘있는 자가 쓰는가'(원제: 난징의 강간)가 미국에서 출판되자, 책은 삽시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녀는 팔려나간 책의 권 수만큼이나 일본 우익들로부터 많은 협박과 린치를 당했다. 그에 따른 스트레스는 그녀를 자살로 몰았지만, 단언컨데 그것은 비겁한 일본 우익들의 승리라고는 볼 수 없다. 그녀의 책은 냉소와 외면으로 묻혀버린 세계의 양심과 정의를 지금도 조금씩 발굴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6.25 당시 군경에게 무고하게 학살당한 분들을 위한 합동 위령제에 경찰서장이 참석하고 경찰청장이 조화를 보냈다고 한다. 정말 박수를 보내주고 싶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국회에서 금전적인 이유로 각종 과거사 위원회를 통폐합하려는 분들이 있다고 한다. 그런 분들께는 아이리스 장의 책, 그 첫 줄을 읽어 드리고 싶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과거를 되풀이 한다." - 조지 산타야나 『역사는 힘있는 자가 쓰는가』 아이리스 장 지음/윤지환 옮김/미다스북스/330p/1만3천원

박지형(자유 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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