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지구가 멈춘다면

입력 2009-01-03 06:00:00

2009년 새해가 시작됐습니다. 특히 올해는 1초가 덤으로 생겼습니다. 지구가 자전하면서 미세하게 시간이 느려지는 것과 원자시계 간에 생기는 시간차를 보정하기 위해 1월 1일에 1초의 윤초를 더한 것이지요. 우리나라에선 새해 첫날 오전 8시 59분 59초와 9시 0초 사이에 8시 59분 60초라는 낯선 시간대가 생겼습니다.

지구·달·해의 움직임은 역법의 기준이 되어 왔지만 이 세 천체가 만들어내는 일(日)·월(月)·연(年) 단위 간에는 사실 연관성이 없습니다. 달이 지구를 한번 공전하는데 29.5일이 걸리기 때문에 음력 12개월로 된 1년은 354일밖에 안 됩니다. 지구 역시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동안 365.2422번 자전하기 때문에 양력에서도 매년 0.2422일이 남습니다. 지구·달이 각각 만들어내는 시간의 오차를 보정하기 위해 윤달·윤년이 생긴 것이지요.

달의 인력 때문에 브레이크가 걸려 지구의 자전 속도는 10만년에 1초 정도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추세대로라면 3억6천만년 뒤에는 하루가 25시간이 되고, 21억년 뒤에는 30시간으로 늘어날 겁니다. 75억년 뒤에는 지구의 자전이 완전히 멈춥니다.

참으로 오묘한 것은 지구보다 100배 큰 태양과 지구의 4분의 1 크기인 달이 지구에서 봤을 때 거의 같은 크기로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지구~달의 평균 거리가 지구~해의 평균 거리의 400분의 1이기에 가능한 조화이지요.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리는 개기일식을 보는 것은 대단한 호사일 수 있습니다. 달이 언제까지나 그 거리에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달은 1년에 3.8cm씩 지구로부터 멀어지고 있습니다. 수억년 전 달은 지금보다 훨씬 가까워서 보름달 빛만으로 신문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밝았다고 합니다.

요즘 극장가에는 '지구가 멈추는 날'이라는 미국영화가 상영되고 있지요. 제목 때문에 지구가 자전 또는 공전을 멈추는 내용인 줄 알았는데, 내용은 그런 것이 아니고 지구를 살리겠다며 외계인이 인류를 말살하려 한다는 설정이라고 합니다. 영화 제목처럼 지구가 자전 또는 공전을 갑자기 중단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지구는 시속 1천600여km의 속도(적도 부근 기준)로 자전하고 있습니다. 태양 주위를 도는 공전 속도는 시속 10만7천160km나 됩니다. 그 움직임이 멈춘다면 관성 때문에 생기는 힘이 상상을 초월할 겁니다. 일단 지표면에 붙어있는 모든 것들이 우주로 날아가 버릴 겁니다. 계절 변화에 따른 대재앙은 그 이후의 문제이겠지요. 모든 생명을 실은 채 오차없이 돌아주는 지구호가 새삼 고마워집니다.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해외 여행이 흔한 요즘 누구나 어렵지 않게 하루를 벌 수 있습니다. 동쪽으로 비행기를 타고 날짜 변경선을 넘으면 되지요. 물론 돌아오면 다시 하루를 까먹기 때문에 도루묵이지만 말입니다. 우리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요. 성자(聖者)들은 시간이 환상이라고 가르칩니다. 과거는 기억 속에 있고 미래는 상상 속에 있을 뿐 우리에게 주어진 자산은 현재 즉 '지금 이 순간'이라고 말입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은 학생들에게 '카르페 디엠'(carpe diem·'현재를 잡아라')이라는 라틴어를 외칩니다. 그러고 보니 현재를 의미하는 영단어 'present'가 '선물'이라는 다중적 함의를 가진 것은 우연이 아닌 듯합니다. 행복한 주말되십시오.

김해용 기획취재부장 kimh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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