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표]세계 희귀 우표

입력 2009-01-01 00:00:00

세계에 한 장 남은 우표는 '팔각형'

◆가장 비싼 우표 36억원

세계에서 가장 비싼 우표는 1856년 영국령 가이아나에서 발행한 임시우표로 무려 36억원을 호가한다. 현재 한 장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우표는 폭풍으로 영국에서 우표가 공급되지 않자 현지에서 소량을 인쇄해 판매한 것이었다. 원래는 4각형이었으나 처음 발견한 소년의 실수로 8각형이 됐다. 소년이 봉투에서 우표를 떼어내다 한쪽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자 나머지 세 귀퉁이도 똑같이 잘라내 8각형을 만들어 버렸다. 가이아나는 이후 한 장 남은 희귀 우표를 도안으로 한 우표까지 발행했다.

◆'문위우표' 우리나라 최고가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우표 가운데 가장 고가는 한 장 가격이 900만원으로 추정되는 '문위우표'다. 고종의 칙령에 따라 1884년 우편제도가 도입되면서 우정총국이 발행한 최초의 우표였다.

◆잘못된 도안으로 유명

도안 잘못으로 유명해진 우표도 있다. 1920년 영국령 서인도제도 세인트 키츠네비스에서 발행된 우표에는 미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산타마리아호 선상에서 망원경으로 신대륙을 바라보는 장면이 인쇄돼 있다. 얼핏 보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이 우표에는 큰 오류가 담겨 있다. 1506년에 죽은 콜럼버스가 1608년에 발명된 망원경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비행기 뒤집혀 인쇄

1918년 미국에서 발행된 24센트짜리 첫 항공우표는 인쇄 잘못으로 희귀성을 갖게 된 경우다. 용지가 거꾸로 들어가는 바람에 경비행기가 뒤집혀 하늘을 나는 모습이 초창기 발행된 일부 우표에 인쇄됐다. 당시 24달러를 주고 이 항공우표 한 시트(100장)를 구입한 윌리엄 로비라는 사람은 실수로 유명해진 우표를 얻는 행운을 얻었다.

◆"통념을 깨라" 삼각형 우표

사각형이라는 통념을 깨고 삼각형으로 만들어진 우표도 있다. 영국이 세계 각지에 개척한 식민지에 우편제도를 보급하던 시기인 1853년 희망봉에서 세계 최초로 삼각형 우표가 발행됐다. 당시 희망봉 우체국 직원들 가운데 글씨를 모르는 문맹들이 많아 우표를 4각형으로 발행할 경우 영국 본토 우표와 식별할 수 없어 큰 혼란이 예상되자 우체국장이 여러가지 궁리 끝에 삼각형 우표를 만들자는 획기적인 안을 제안했다는 것.

◆액면가 500달러, 비싸서 사용 못해

가격이 너무 높아 사용할 수 없었던 우표도 발행됐다. 1908년 해협식민지(말레이반도 남부 말라카해협에 자리잡고 있는 피낭'말라카'싱가포르와 부속도서로 이뤄진 구 영국령 식민지)는 에드워드 7세의 옆모습을 도안으로 우표 겸 인지를 발행했는데 액면가가 25달러와 500달러였다.

높은 액면 가격에 걸맞게 흰 흙가루(백악)가 충분히 묻혀진 최고급 용지가 사용됐다. 하지만 당시 해협식민지의 통상 우표요금(1센트) 보다 최고 5만배나 비싸 사용하기에는 처음부터 무리였다.

또 1950년대 콜롬비아에서 발행한 우표는 18mm×14mm로 매우 작은 반면 1979년 마샬군도가 선보인 우표는 190mm×140mm로 사용 보다는 수집가를 위한 목적으로 발행됐다.

◆사용하다 남은 우표 고쳐 사용해 희귀품으로

희귀 우표와 관련된 재미 있는 이야기도 많다. 중국 청나라 정부는 우표를 발행할 여력이 없어 외국세관에서 사용하다 남은 우표들을 가져와 첨쇄(액면 등을 고친 것)를 통해 임시우표를 제작했다. 그러나 이마저 물량이 부족하자 세관이 사용했던 우표까지 얻어와 가쇄(나라 이름을 재인쇄한 것) 및 첨쇄를 해서 임시우표로 사용했다. 이 우표가 바로 '홍화인삼분'으로 불리는 중국의 진귀우표 중 하나다.

◆핀란드, 펜으로 소인 표시

1856년 첫 우표를 발행한 핀란드는 우표발행 10여년 전부터 우표와 비슷한 도안을 봉투에 인쇄해 사용하고 있었다. 핀란드 정부는 봉투 재사용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한 봉투의 도안 위에 펜으로 X자를 표시했는데 이같은 관습이 계속되면서 펜으로 소인한 진귀한 우표를 가진 나라가 됐다.

◆"네 얼굴 우표에 넣지마" 새우표 승인 안해

캐나다 동남부에 위치한 뉴브런즈윅 주정부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추진하면서 우정장관(체신장관)이었던 찰스 코넬에게 새우표의 발행권을 위임했다.

코넬은 새우표 발행에 관한 모든 사항을 극비에 부치다가 발행일인 1860년 5월 15일 아침 각료회의에서 견본을 공개하며 승인을 요구했다.

우표를 본 각료들은 6종의 우표 가운데 5센트짜리 우표가 코넬 본인의 얼굴을 도안으로 작성된 것을 보고 이 우표의 발행을 승인하지 않았다고 한다.

◆파라과이'볼리비아 영토싸움은 '우표전쟁'

우표 때문에 전쟁도 발생했다. 1932년 파라과이와 볼리비아 사이에 일어난 영토 전쟁은 '우표전쟁'으로 불린다. 당시 두 나라는 서로 차코 지방을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파라과이가 차코 지방을 그린 우표를 내자 볼리비아는 엄중 항의를 한 뒤 전쟁을 일으켰다. 전쟁 결과 1939년 차코 지방은 파라과이 차지가 됐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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