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표]우표 수집가 허진옥

입력 2009-01-01 00:00:00

우표에는 세계가 있어요

우표 수집가로 유명한 미국 32대 대통령 루즈벨트는 "우표에서 얻은 지식이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더 많다'라는 말을 남겼다. 우표 수집이 갖는 교육적인 효과 때문에 한때 학교에서 우표수집을 권장하던 시기도 있었다. 우표수집가 허진옥(59·경보사 대표)씨가 처음 우표를 모으기 시작한 때는 초등학교 5학년인 1961년. 지금 같이 놀거리가 다양하지 못했던 시절, 우표수집은 학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가 있었다.

"친구가 링컨 대통령 얼굴이 실린 미국우표를 여러장 갖고 있었습니다. 하도 탐이나서 우리 우표 여러장과 미국우표 1장을 바꾼 것이 우표 수집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용돈을 털어 우표를 수집해 온 허씨는 1974년 공직생활을 시작하면서 체계적으로 우표수집에 나섰다. "그 전까지는 마구잡이식으로 우표를 모았죠. 수입이 생기면서부터 전국의 고서점, 골동품가게 등을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옛날 편지봉투를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그의 집에는 서재를 다 채우고 모자라 다락방까지 점령한 우표들로 가득하다. 체계적으로 우표를 정리한 바인더만 500여권이며 정리하지 못한 우표를 합치면 너무 많아 본인도 얼마나 되는지 모를 정도다.

우표 수집과 관련된 에피소드도 많다. 공무원 월급이 4만6천원일 때 우표수집에 10만원을 투자한 적도 있었다. 또 월급을 몽땅 털어 고서점에서 옛날 편지봉투 1상자를 사들고 온 것을 본 아내가 현관문을 열어주지 않아 고생한 경험도 이제는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이 됐다. 허씨가 구입한 우표 가운데 가장 고가는 1961년 처음 도입된 라벨이 붙은 등기봉투다. 25년 전 월급이 10만원 봉급쟁이가 월급의 12배에 해당하는 120만원을 주고 산 것이다.

"버는 돈은 모두 우표수집에 사용했습니다. 계산해보지 않아 정확히 얼마 들어간지 모르겠습니다. 늘 돈이 부족해서 돈을 빌리거나 적금을 해약해서 우표를 구입했습니다."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하고 외국여행도 자유로워 외국 우표 수집이 수월하지만 과거에는 매우 힘들었다. 일본·대만·미국에서 발행하는 우표 잡지를 어렵사리 구입한 뒤 우표상에게 편지를 보내 외국 우표를 수집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외국 우편물은 검열을 거쳐 국내로 들어왔습니다. 특히 공산국가 우편물은 예사로 압류 당했습니다. 공산국가에는 돈을 송금 할 수 없어 한국 우표를 보내주고 외국 우표를 받는 물물교환식으로 이뤄졌습니다."

그가 우여곡절 끝에 구입한 우표 가운데는 세계 최초로 발행된 1페니짜리 우표, 한국 우표역사의 장을 연 문위우표, 반으로 짤라 사용할 수 있는 마카오 우표, 부탄의 실크우표, 88서울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적도기니공화국에서 발행한 금우표, 영국령 산다섬의 알루미늄우표 등 희귀우표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50여년 우표 수집을 하다보니 우표 전문가가 된 허씨는 우표 발행에도 많은 조언을 하고 있다. 1966년 장수하늘소를 소재로 발행된 60전짜리 보통우표의 경우 장수하늘소 더듬이가 뒤로 뻗어 있었다. 더듬이가 뒤로 간 것은 죽은 곤충을 의미하므로 도안이 잘못되었다는 허씨의 지적에 따라 이후에는 더듬이가 앞으로 뻗어 나온 우표가 발행됐다.

대한민국우표전시회 심사위원, (사)한국우취연합 우취보급위원회 위원 등을 맡고 있는 그는 "우표에 대한 사랑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죠. 우표 속에는 세계 각국의 관광·유물·인물·경제·사회 등이 모두 들어있습니다. 우표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탐구하는 수집행위는 심신안정 뿐 아니라 교육적인 순기능도 있다"면서 "우표수집 인구가 많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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