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었다. 어제와 똑같은 하루지만 '새해'라 부르고 부푼 마음과 각오로 한 해를 맞는 게 새해 첫날의 풍습이다. 어제와 오늘을 갈라 같지만 다르다고 여기는 게 우리의 오랜 풍습이다. 새해를 맞았지만 사람들 마음은 여느 해처럼 그리 밝지 않다. 경제 위기의 삭풍에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정국, 사회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는 갈등과 반목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전국시대 때 東周(동주)에 蘇秦(소진)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소진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뛰어난 스승에게 배움을 청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공부가 익어 문리가 트인 그는 자기를 알아주는 나라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주 현왕은 그를 무시했고, 진나라와 조나라에서도 그를 등용하지 않았다. 그러다 연나라 文侯(문후)를 만난 소진은 열국의 각축전에서 연나라를 안전하게 하는 방책을 제시해 신망을 얻었다.
그가 내놓은 계책은 주변을 먼저 걱정하라는 것이었다. 천 리 밖의 진나라가 강하지만 주변의 조나라, 제나라를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나라가 연나라를 치면 천 리 밖에서 싸우지만 조나라가 연나라를 치면 백 리 안에서 싸우게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백 리 안의 근심거리를 생각하지 않고 천 리 밖을 중시한다면 이보다 더 잘못된 계책은 없다'는 간언이었다. 연나라를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는 서쪽의 조나라, 남쪽의 제나라와의 합종이 시급한 일이라고 소진은 주장했다. 문후는 그의 계책을 받아들여 환란에 대비했다.
금융 위기가 미국에서 불어닥쳤지만 몸살을 앓기는 어느 나라든 매한가지다. 그만큼 경계가 없어졌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경제 위기를 걱정하면서도 정치권은 정작 급한 일에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서로 구국의 결단이라며 제 주장만 하면서 입과 혀끝만 믿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는 엄한 삭풍을 견뎌낼 수 있을까 싶다. 주변이 어지러운데 모두 멀리만 보고 있는 형국이다.
음력으로는 아직 戊子(무자)년이다. 20여 일이 더 지나야 己丑(기축)년으로 바뀐다. 어떻든 '서리가 밟히면 물 어는 시절이 온다'는 말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을 일이다. 또다시 맞는 '소의 해'가 그 어느 때보다 어렵겠지만 소처럼 우직하게 할 일만 제대로 한다면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품은 소망이 모두 이뤄지는 한 해가 되기를.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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