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도를 꿈꾸는 경명여고 2학년 서윤정(17)양은 자신의 꿈을 이미 실현했다. 내년 2월쯤이면 자신의 이름으로 실린 글이 책으로 출판되기 때문이다. 비록 여러 명의 글이 함께 실리는 책이지만 소망하던 '등단'했다는 것이 여간 즐겁지가 않다. 윤정양은 "상업성을 지녔다거나 작품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책이라는 결과물을 낸 것만으로도 흥분된다"고 말했다.
대구의 고등학교 사이에 책 쓰기 바람이 불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 '책 쓰기 프로젝트'를 실시해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글을 쓰게 하고 작품으로 만들게 하고 있는 것. 이를 통해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
◆펜에 자신의 꿈을 실어
경명여고의 책 쓰기는 '꿈반이(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라는 동아리 활동을 통해 이뤄졌다. 한준희 교사는 여름방학 때 대구시교육청에서 책 쓰기 연수를 받은 뒤 학교 내에 '책 쓰기 프로젝트'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한 교사는 글쓰기를 좋아하거나 자신의 꿈을 한번이라도 펼치고 싶어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고를 내고 면접을 통해 지난 9월 2학년 14명을 뽑았다. 그런 뒤 교내 도서관인 '책뜨락'을 무대로 2주에 한차례 방과후에 모임을 가졌다. 그는 "입시공부의 부담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모일 수는 없었다"며 "첫 모임을 가질 때도 동아리 활동을 하더라도 성적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라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한 교사는 꿈을 주제로 잡고 초반에는 1분간 글쓰기나 자유연상, 도서관에 있는 책의 목차를 확인하는 등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데 주안점을 뒀다. 하지만 모임이 지속될수록 교사의 역할은 거의 없어졌다. 학생들 스스로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책 쓰는 과정을 주도했기 때문.
서양은 "보통 수업은 선생님에 의해 주도되는 데 반해 책 쓰기 수업은 우리들끼리 얘기를 하고 우리 시각에서 일을 진행할 수 있어 무척 새로웠다"고 평했다.
모임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의 글에 무슨 내용을 넣을지 고민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다양한 방식을 통해 독창적인 작품을 완성했다. 서양은 소제목을 '몽상가'라 정하고 총 3단계로 나눠 꿈을 얻게 된 동기와 평소 백일장 등 각종 대회에 참가하면서 작성했던 자신의 글을 소개하는가 하면 자신이 평소 좋아하던 작가들을 만난 일이나 작품, 에피소드 등을 소개하는 형식의 글을 만들었다.
형사가 꿈인 강예홍(17)양은 셜록홈즈의 작품을 자신의 시각으로 해석했다. 전체적인 진행은 비슷하지만 해결과정이나 결과를 다르게 해 한 편의 추리소설로 만든 것. 구체적인 진로를 정하지 못한 권진욱(17)양은 자신의 삶을 정리해봤다. '접속'이란 제목으로 자신의 행복했던 기억,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 슬펐던 기억 등을 촘촘한 그물로 훑은 것.
이렇게 14명의 학생들은 각자 원고지 20~30장 분량의 글을 최근 완성했다. 한 교사는 "한 출판사와 계약해 내년 2월이면 서점에 소개될 예정"이라고 했다.
◆책 쓰기 활동 '꿈틀'
경명여고뿐 아니라 책 쓰기 활동은 다른 고교에서도 펼쳐지고 있다. 청구고 또한 책 쓰기를 진로교육과 연계시켜 2학기에 수업을 진행했다. 이동우 교사는 여름방학 때 책 쓰기 연수를 받고 진로교육(매주 1시간) 때에 이를 활용하기로 했다. 1학년 학생들을 상대로 자신의 꿈과 미래 계획을 포트폴리오 형식으로 만들게 하고 이를 수행평가에 반영하기로 한 것.
이 교사는 "10월 말에 학생들에게 1개월의 시간을 주고 자신의 직업과 동기, 연령별 계획이나 대학 진학 등 자신의 미래에 관련된 모든 내용을 정리하도록 했다"며 "가능하면 자신의 희망 전공과 관련된 대학생 선배나 전문가와 인터뷰도 하라고 시켰다"고 말했다. 이렇게 하자 다양한 내용들이 쏟아져 나왔다. 시인을 꿈꾸는 학생은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과 작품 등을 찾아 활용하는가 하면 CEO를 희망하는 학생의 경우는 서울대 경영학부 교육과정을 일일이 분석하고 모범적인 기업인에 대해 조사도 했다.
이 교사는 학생들 작품 중 우수 작품을 10편 정도 뽑아 지난 20일 교내에서 '제1회 나의 꿈, 나의 미래 발표대회'도 가졌다. 그는 사회 수업시간에도 책 쓰기 프로젝트를 도입할 예정이다.
대구시교육청은 현재 교사들을 대상으로 책 쓰기 연수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어 내년엔 이 같은 활동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교육정책과 한원경 장학관은 "연수와 워크시트 개발, 연구학교 운영 및 우수학교 시상 등 내년에 각종 책 쓰기 교육활동이 계획돼 있어 앞으로 대구 고교에 책 쓰기 열풍이 불 것"이라고 밝혔다.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
책 쓰기를 통한 효과는 무척 다양하다. 글을 쓰면서 작문력이 향상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모임을 가지면서 토론력과 표현력도 좋아진다. 또 작품을 냈다는 점에서 자신감과 뿌듯함도 얻을 수 있다. 학부모 김채원(45·여·대구 북구 침산2동)씨는 "딸이 책 쓰기에 참여하면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꿈에 대한 관심과 확신도 갖게 됐다"며 "학생들에겐 확실히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권진욱양은 "입시 공부 때문에 자신의 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는데 글 쓰기 수업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됐다"고 했다.
또 학생들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계기도 된다. 한준희 교사는 "자신의 꿈을 생각하면서 자연스레 상처가 나타나고 책 쓰기를 통해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을 목격했는데 이는 생각지도 못한 성과"라고 말했다. 자살까지 생각했던 한 학생은 책 쓰기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상처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그런 문제를 다른 학생과 공유하면서 극복할 수 있게 됐다는 것. 한 교사는 "지금은 그 학생이 전교 1, 2등을 하는 등 모범생으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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