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 안일한 대응이 禍 키웠다

입력 2008-12-27 08:21:01

사고 첫날 건설과 직원들 자체 수습…이틀뒤에야 오일펜스 설치

"잘했으면 피해 규모를 줄일 수 있었을텐데···."

낙동강 중하류를 기름으로 시커멓게 물들인 경북 고령군 개진면 기름유출 사고는 관계 당국의 판단착오와 공조미비 등으로 피해가 커진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맨 처음 사고를 수습하던 공무원들이 무심코 대응한데다 오일펜스도 이틀 뒤에나 설치하는 등 기본적인 방제수칙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바람에 심각한 환경사고로 변했다.

◆공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기름유출 사고를 맨 처음 안 것은 22일 오전 7시쯤. 모래채취 준설선 선장이 주말과 휴일, 이틀을 쉬고 작업을 하러 나왔다가 배가 비스듬하게 기울어지면서 엔진 오일이 쏟아지는 것을 발견했다. 선장의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한 고령군청 건설과 직원들은 이를 경미한 사고로 판단했다. 먼저 유화제를 뿌리고 물막이 공사를 하는 등 자체 수습을 하고 저녁 때쯤 현장에서 철수했다. 환경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데도 관례대로 해당 과(課) 단독으로 일을 처리하다가 초기 방제 시기를 놓친 셈. 처음부터 환경과 직원들과 함께 방제에 나섰더라면 피해 확산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이날 군 관계자들은 "기름 2ℓ가 낙동강에 유출됐으나 방제작업을 마무리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 다음날 아침부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사고지점 맞은편인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강변에 기름띠가 기다랗게 형성돼 있다는 신고가 쏟아졌다. 언제부터, 얼마만큼 유출됐는지 알 수 없는 기름이 바람에 따라 강 건너편으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고령군청은 공무원 수십명으로 방제단을 꾸려 급히 방제작업에 나섰다. 흡착포로 자갈이나 돌에 묻은 기름을 닦아내고 물에 뜬 기름을 걷어내기 시작했지만 이미 역부족이었다. 이때에도 방제작업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오일펜스를 설치하지 않았다. 군 관계자는 "오일펜스 장비를 제때 구하지 못해 부산에서 구해 오느라 시간이 걸려 기름 확산을 막을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오일펜스는 사고가 난지 이틀만인 24일에야 사고지점과 하류인 구지면 도동서원 앞, 고령면 우곡교 앞 등 3군데에 설치했지만 기름은 강 곳곳에 퍼진 뒤였다. 이 때문에 25일 사고지점에서 17km 떨어진 우곡교에서도 기름띠가 새로 발견되면서 경남·부산지역의 하류에서도 추가 오염이 우려되고 있다.

고령군은 뒤늦은 24일부터 민관 합동으로 대규모 방제단을 구성해 본격적인 방제작업에 나섰다. 수백명이 강가에 앉아 25일까지 이틀간 흡착포로 기름을 닦아냈다. 군청 관계자는 "강에 떠 있는 기름이나 눈에 띄는 기름은 일단 없애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돌이나 바위에 끼어 있거나 모래 밑에 침전된 기름을 모두 제거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해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강 건너편에 있는 달성군도 23일 오전 구지면 자모리와 오설리 강변에 기름띠가 형성돼 있는 사실을 알고도 고령군에 제때 알리지도 않고 방제작업에 곧바로 나서지도 않았다. 군청간 공조체제가 제대로 작동됐으면 기름 확산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결국 관계기관의 협조 및 전문성 부족, 공무원들의 대응 미숙 등이 사태를 키운 꼴이됐다.

◆축소에만 급급한 고령군=고령군은 사고가 나자 외부에 알리지도 않고 자체적으로 사고를 수습하려고만 했다. 사태를 알리고 관계기관 간 힘을 합쳐 해결하기보다는 이를 감추고 축소하는데 급급했다. 사고 규모를 물으면 공무원들은 "큰 일 아니다"라는 답변만 했다.

고령군은 초기에 환경청이나 강 건너편의 달성군 등에 사고 사실을 통보하지 않아 혼란을 부채질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달성군 관계자는 "고령군에서 사태 처리를 잘못해 애궂게 피해를 입고 있지만 초기에 이를 통보해주지 않아 다음날 진화 작업이 훨씬 늦어졌다"고 했다.

취재팀이 25일 사고현장을 찾았을 때도 이를 알려주지도 않고 숨기려 했다. "사고 현장이 어디냐"고 묻자 한 간부 공무원은 "방제작업이 모두 끝났고 강변이 깨끗해졌다"고 둘러댔다. 취재팀이 이곳저곳에 물어 사고현장을 찾아가니 공무원, 봉사단체 직원 등 700여명이 강가에 앉아 방제작업을 한창 벌이고 있었다. 고령군 관계자는 "처음에는 경미한 사고인데다 방제작업을 마무리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태가 커졌을 뿐이지, 이를 감추려 한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고령군이 좀더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대응을 했더라면 사고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령·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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