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방법이야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아무래도 '제야의 종소리'를 들어야만 비로소 한해가 오고감을 실감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줄로 생각한다.
서울 종로의 보신각 종소리는 텔레비전 중계화면을 통해 전국에 울려 퍼지고, 여러 지방에서는 제각기 제 고향의 종을 한껏 울리며 한 해를 떠나보내곤 한다. 이 종소리를 듣기 위해 종각 주변에 발 디딜 틈이 없이 많은 사람들이 밀려드는 것은 어제오늘의 풍경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제야의 종'을 울리는 뜻과 그 유래는 어떠한 것일까?
'제야(除夜)'는 '섣달 그믐날'이라는 뜻으로, 다르게는 '제석(除夕)'이라고도 부른다. 그러니까 제야의 종은 '섣달 그믐날 밤에 울리는 종'이다. 그 유래는 불교식 풍습에 따른 것으로 제야의 종은 백팔번뇌를 없앤다 하여 107번은 '자정이 되기 전에', 그리고 나머지 1번은 '해가 바뀐 직후'에 타종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전한다.
하지만 이것이 불교식 풍습이라고 할지라도, 제야의 종을 울리는 것은 다분히 일본식 세시풍속에서 전래된 것이라는 점은 꼭 유의할 필요가 있다. 두말할 나위 없이 한국, 중국, 일본의 동양 3국 가운데 제야의 종 풍속이 가장 성행하는 나라는 일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나라에도 제야의 종이 본격적으로 유입된 것은 유감스럽게도 일제강점기 때의 일이었다. 1927년 2월 16일에 첫 방송을 개시한 경성방송국(호출부호 JODK)에서 특별기획으로 1929년 정초에 제야의 종소리를 스튜디오에서 울려 생방송으로 내보낸 것이 시초였다. 이때에 사용된 종은 서울 남산 아래에 있던 일본인 사찰 동본원사에서 빌려온 것이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멀리 일본 동경 아사쿠사의 관음당에서 직접 제야의 종소리를 중계하는 방식으로 방송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조선의 종소리와 이른바 '내지'의 종소리를 교대로 섞어서 해마다 제야의 종소리를 중계하는 특집이벤트는 일제강점기 내내 지속되었는데, 이 가운데는 경주의 봉덕사종도 울려 전국에 생중계로 내보낸 일도 있었다.
이러한 일들이 해마다 거듭되다 보니, 은연중에 우리에게도 습성이 되었는지 해방이 되었음에도 1953년 말부터 제야의 종 타종이 재개되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그 대상이 종로의 보신각종이었다.
원래 보신각종은 조선시대에 줄곧 인경과 파루종으로 사용되던 것이었으나 1895년 9월 29일부터는 정오와 자정에 타종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가 1908년 4월 1일부터는 포를 쏘는 것으로 기능이 대체되면서 타종은 완전히 중단상태에 들어있었다. 1912년 일본 명치천황이 죽었을 때 단 한번 보신각종을 울린 적이 있었으나, 보신각종은 그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제야의 종으로 사용된 사실은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
예전의 기록을 찾아보면 연종포(年終砲)라고 하여 섣달 그믐날에 궁중에서 대포를 쏘아 크게 소리를 내어 악귀를 쫓아내는 풍습 정도는 있었으나, 우리의 풍속에 제야의 종을 울리며 새해를 맞이하였다는 흔적은 찾아낼 수 없다.
이렇게 본다면 해마다 꼬박꼬박 제야의 종을 울리며 새해를 맞이하는 건 고작해야 반세기를 조금 넘긴 '현대판' 세시풍속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더구나 이러한 풍속의 확산이 일제강점기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매우 껄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애당초 제야의 종을 울리는 뜻이 나쁜 것은 아닐진대 제야의 종은 시끌벅적한 길거리 타종의 형태가 아니라 조용한 산사의 몫으로 되돌려놓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덧붙여 본다.
이순우·우리문화재자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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