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상·허본좌…매일신문 '2008년 핫클릭' 기사는?

입력 2008-12-27 06:00:00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사람은 '칠흑 같은 어둠'이 어떤 느낌인지 안다. 구름 낀 그믐날 밤, 가끔 저 멀리 신작로를 달리는 자동차 불빛과 마을 어귀 외로운 가로등만이 세상 빛의 전부였다. 행여 마실이라도 나가려면 손전등이 필수였다. 손전등을 끄고 나면 바로 앞 돌담을 돌 때에도 손을 더듬어야 할 정도로 캄캄한 세상. 그렇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2008년이 지나간다. 그 한 해를 매일신문 인터넷 홈페이지(imaeil.com)에 실린 뉴스의 클릭 순위로 돌이켜봤다. 위기는 닥치기 전이 더 무서운 법. 이제 시작됐다니 끝날 일만 남았다고 희망을 품어본다.

◆눈길 끈 황당 기사

'빵상 아줌마' 가라사대 "빵상, 깨랑까랑." 올 초만 해도 헛웃음으로 넘겼던 이 한 마디가 새삼 와 닿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주신'과 대화를 주고받은 빵상 아줌마 황선자(47)씨가 화두처럼 던진 이 말은 지구 언어로 풀면 "인간들아, 무엇이 알고 싶으냐?"라는 뜻이라고. 워낙에 복잡다단한 세상이다 보니 정말 '가끔씩' 우리는 무엇이 알고픈지도 잊고 사는 것 같다. 한때 인터넷 카페 가입자가 1만명을 헤아리고, 사이트 개설 20여일 만에 40만명이 다녀갔다지만 빵상 아줌마도 서서히 잊혀지고 있다. IQ 430의 허경영(58) 경제공화당 총재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결혼설에 따른 명예훼손 등으로 기소된 뒤에도 여전히 '허본좌'의 내공을 잃지 않았다. 재판정에서 "내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라고 주문했고, 검사와 '본좌'에 담긴 의미에 대해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하기야 올해 돌아가는 세상사를 돌이켜보노라면, 빵상 아줌마나 허본좌보다 우리는 과연 나은지 아니 조금 다르기나 한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국회 꼬라지를 보니 오나전캐안습. 대략난감에 쩐다 쩔어.' 행여 수십년 뒤 신문 기사 제목이 이렇게 달릴까 걱정스럽다. 재치도 좋고 유머도 좋다지만 도대체 의미가 통하지 않으니. 외래어처럼 돼 버린 인터넷 언어의 실태를 꼬집은 기사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참고로 앞서 내용을 풀어보면, '국회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정말 눈물이 나올 정도다. 참 난감한 상황이고 안타까울 정도'라는 뜻.

'억울한 고담 대구'의 기구한(?) 사연을 담은 기사는 인터넷 댓글로 뜨거운 논쟁을 낳았다. 한 전직 대통령이 푸념처럼 내뱉었던 "왜 나만 갖고 그래?"라는 말이 떠오른다. 한때 TK의 본산으로, 대형 참사의 아픔을 간직한 도시로, '보수 꼴통'이라는 냉소를 한몸에 받고 있지만 2009년에는 부디 '고담'이라는 가슴 서늘한 수식어를 떼어내기만 바랄 뿐. 인터뷰 기사 중 유일하게 30위권에 든 '유시민 전 국회의원' 기사는 그래서 더욱 눈길을 끈다. 유 전 의원은 경북대 강의와 저서 준비 중으로 한창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것이 궁금했다

궁금한 것도 많았던 한 해였다. 어렵고 힘든 사람에 대해 따뜻한 관심을 가지자고 하면서도 정작 우리 관심은 보다 '잘난' 사람들에게 쏠리게 마련. 이런 궁금증을 반영한 기사가 지난 10월에 실렸던 '대구의 백만장자'였다. 금융회사가 '모시는' VIP 고객의 기준을 자산 15억원으로 잡았고, 그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조사한 내용. 예상대로 수성구가 무려 73%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인구 대비로 볼 때 달서구는 의외로 적었다. 특히 수성구 수성동은 대구 전체 백만장자의 25%가 사는 동네였다. 앞으로 사는 동네를 물어볼 때 '수성동'이라고 답하면 다시 한번 쳐다볼 일이다. 지난 2000년부터 올 4월까지 '도전! 골든벨'에서 최종 우승을 차지한 지역 고교생 12명이 과연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취재한 기사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대부분 명문대에 진학했고, 올해 수능을 친 학생들도 2명 있었다.

'대구엔 미인이 많다?'는 희비가 엇갈린 대표적 기사였다. 800건 가까운 댓글 중에는 '미인 도시, 대구'에 대해 공감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미인을 보여달라'며 장난기 어린 힐난을 하는 내용도 적잖았다. 다소 뜬금없었지만 '대구의 100층 빌딩'에 대한 기사는 호기심을 자극한 내용이었다. 서울은 용산에 152층(620m)짜리 오피스빌딩, 상암동에 130층짜리 빌딩이 들어서고, 인천도 송도에 151층(610m) 빌딩이 발주돼 있으며, 부산은 자갈치시장 주변 구 부산시청 자리에 120층짜리 호텔을 비롯해 100층 이상 빌딩 신축 추진 4건 등이 있다고 했다. 경기도 어려운 와중에 대구의 100층 빌딩은 요원한 이야기처럼 들린다. 원자재 가격도 급등하고 세상이 뒤숭숭해지기 시작하던 무렵, '2012년 세상이 끝나?'라는 기사는 흥미거리로만 끝나기에는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소형차를 타고 다니면 얕본다는 통념을 직접 실험해 본 '경차 타면 정말 얕볼까?'라는 기사는 의외의 반전이었다. 대구는 유난스레 갈수록 고급 대형 승용차에 대한 수요가 늘고 경차 소비는 줄어드는 도시. 하지만 고급식당, 주유소, 골프장 등을 경차를 몰고 다녀봐도 누구 하나 차별하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고 직접 체험에 나선 기자는 전했다. 부지불식간에 갖고 있는 통념과 선입견이 오히려 그런 감정을 조장함을 알려주는 의미 있는 기사로 평가받았다.

◆세태 반영

매년 돌이켜보면 '다사다난'하지 않았던 때가 있을까? 하지만 올해만큼 기복이 심한 때도 드물었을 성 싶다. 올초부터 치솟기 시작한 원유 가격은 배럴당 200달러 시대가 코 앞이라며 전 세계인들의 걱정을 자아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가장 많이 본 기사'로 오르기도 했고, 이후 모 방송국에서 연말 특집으로 기획 중이라며 관련 자료를 넘겨달라는 요청까지 해 왔다. 하지만 일년도 채 안 돼 원유 가격은 배럴당 30달러대로 폭락해버렸다. 알 수 없는 것이 경제라지만 이쯤 되면 도대체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실체 없는 경제 주체가 아니라 누군가 배후에서 조종한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기자 역시 한때 기사의 반응에 으쓱했지만 투기세력들의 불안감 조장에 일조했다는 '죄책감'(?)을 지울 수 없다. 불황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세태 고발 기사도 많은 눈길을 끌었다. 대표적 기사가 "30, 40대 남성 접대부, '아빠방' 우후죽순"이었다. 대구에만 50개가 넘는 업체가 성업 중이라는데, 이 역시 어른들 표현을 빌리자면 '사지 멀쩡한 ×들'이 얼마나 할 일이 없으면 그렇게 먹고살겠느냐는 푸념이 나올 법한 기사였다.

불황은 가정마저 반토막내고 말았다. 11월 하순에 쓴 기사에는 올 10월까지 대구지역 이혼사건이 8천506건으로 지난해보다 7.3%(575건) 늘었다고 한다. 이혼 전 1~3개월간 의무적으로 생각할 시간을 주는 '이혼숙려기간제'도 경제난 앞에서는 이혼율을 줄이지 못하고 있다고 기사는 적고 있다. 대구 경제 침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미분양 아파트 기사도 올 한해 핫클릭을 장식했다. 미분양 물량을 전세로 돌린다는 정부 방침에 숨어있던 미분양 물량이 속속 드러났고, 분양가보다 20% 이상 싸게 살 기회가 생겨도 아직 아파트 시장은 침묵 속에 빠져 좀처럼 회생 기미가 없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