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1만2천174명에 달했다. 하루 33명, 44분에 1명이 자살을 한 셈으로, OECD 국가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란 오명을 쓰게 됐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극심한 경제 위기에다 잇따른 연예인들의 자살 영향으로 올해 역시 안타깝게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자살이란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겐 엇비슷한 공통점이 있다. 마지막 순간 그들이 마음을 털어놓고 얘기하거나,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없었다는 것이다.
지난 1985년 문을 연 '대구생명의전화'. 23년이란 긴 세월에 걸쳐 자살에 이를 정도로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천사 역할을 하고 있다. 하루 24시간, 1년 365일 꼬박 대구생명의전화는 활짝 열려 있다. 온갖 아픔과 고민, 좌절감, 솟구치는 분노 등으로 삶에 지치고 절망한 사람들이 언제든 전화를 걸어오면, 대구생명의전화 상담봉사자들은 그들의 말을 들어주며 함께 아픔과 마음을 나누고 있다.
강산이 두번 바뀌는 세월이 넘는 동안 대구생명의전화는 22만4천500여건의 상담을 해줬다. 남녀 문제가 20.9%로 가장 많고 부부 문제(18.9%), 성 문제(11.9%), 가족 문제(11.2%)가 그 뒤를 잇고 있다. 특히 올해엔 전화로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 10명 중 7명이 경제와 관련된 고민거리로 괴로움을 털어놓는 등 경제 문제가 압도적으로 늘어났다고 이경미 소장은 얘기했다.
대구생명의전화에서 상담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은 250여명. 하루 4시간씩 2인 1조로 전화상담을 하고 있는 이들은 근무 시간 내내 상담실 밖으로 거의 나오지 못하며 봉사를 하고 있다. 4시간 동안 받는 전화는 10통 안팎. 30분 통화는 기본이고 하소연이 길어지면 1시간 30분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상담봉사자들의 연령은 20대에서 70대까지 다양하며 여성이 80%를 차지하고 있다.
삶의 어려움을 토로하기 위해 전화를 걸어온 사람과 상담봉사자는 비록 전화를 통한 짧은 만남이지만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을 나누는 경우가 많다. "어느 여성은 결혼한 지 1년도 안 돼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면서 마음 속의 고통을 호소해 왔죠. 저도 상담봉사를 하기 얼마전 남편을 잃어 그분 말이 가슴에 와 닿았어요. 결국 둘이 전화통을 붙잡고 같이 울어버렸습니다."(어느 여성 봉사자의 얘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생명의전화를 받는 상담자들 모두는 "내 말이 전화를 걸어온 사람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상담을 하고 있다. 삶을 포기하려던 사람들이 생명의전화를 통해 다시 살 힘을 얻게 돼 고맙다는 말을 해올 때 봉사자들은 모든 심신의 피로감을 잊고, 비할 데 없는 보람과 기쁨을 얻는다는 얘기다.
상담봉사자들은 대구생명의전화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로부터 교육을 받고 심도 있는 실습 등을 거쳐 상담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23년 동안 배출된 상담봉사자가 2천600명을 넘는다. 이 소장은 "매년 2회 3개월 과정으로 전화상담원 양성교육을 하고 있다"며 "교육을 수료한 뒤 다른 기관에서 상담 업무를 보는 이들이 많은 등 '상담원 사관학교'나 마찬가지인 셈"이라고 귀띔했다.
대구생명의전화는 전화상담 외에도 교정기관 재소자 상담 및 교육,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을 위한 캠페인 등에도 힘을 쏟고 있다. 지난 10월 연 '2008 생명사랑 밤길걷기-어둠에서 희망으로 내면을 향한 여정'이 대표적인 행사다. 이 행사에 참가한 2천500여명은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대구스타디움에서 수성못을 거쳐 대봉교까지 걸으며 생명의 소중함을 되새겼다. 이재동 대구생명의전화 대표이사는 "참가자들은 친구, 연인, 가족과 함께 밤길을 걸으며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현재와 미래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가슴 깊이 느꼈다"고 얘기했다.
또 대구생명의전화는 1999년 부설 장미회를 설립, 간질환자들을 위한 진료사업을 실시하고 생계비 및 비타민, 수술비 지원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완치가 가능하나 생활이 어려워 수술을 받지 못하는 간질환자에 대한 수술비를 전액 지원하고 영남대의료원과 연계해 중국과 캄보디아, 네팔,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해외의료봉사활동도 같이 하고 있다. 대구생명의전화는 산격종합사회복지관, 꿈동산어린이집, 북구지역자활센터 등을 산하에 두고 있기도 하다.
이 대표는 "전화를 들고 다니는 시대가 된 만큼 생명의전화가 해야 할 일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며 "앞으로는 자살 예방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가오는 새해엔 고민 때문에 삶을 힘겨워하기보단 즐겁게 인생을 사는 분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고 말을 맺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 생명의 전화는?=1963년 호주 시드니에서 알렌 워커 목사에 의해 탄생됐다. 워커 목사는 깊은 절망에 빠져 자살을 기도하려던 젊은 청년과의 전화를 통해 그가 삶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도록 상담을 해줬다. 이에 착안, 전화를 통해 고통과 위기에 처한 이웃들을 돕기 위한 생명의전화 운동을 시작하게 됐다. 현재 19개국 261개 도시에 센터가 설치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6년 서울 생명의전화가 '도움은 전화처럼 가까운 곳에'란 표어를 걸고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개통식을 가졌으며 이것이 한국생명의전화 모체가 됐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