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하우스로 만든 작업실(공방)에서 만난 서규철(63)씨는 장작 난로에 은박지로 싸서 구워 노랗게 익은 고구마를 건네주시며 "미리 터득한 관련 지식을 가르쳐 주는 것 또한 행복이다"고 웃음 지었다. "배운 것을 나눈다는 데 보람을 느끼고 있다"는 그는 주윗 사람들의 권유를 받아들여 내년 초엔 바로 옆에 새로 지은 공방에 '사발연구소'란 명패를 걸 참이다. 사발을 만들고 구워낸지 10년만에 이룬 쾌거다. 찻사발·국사발·밥사발·막걸리잔이 바로 서씨가 만드는 그릇, 사발이다.
서씨는 지난 2월 퇴직한 전직 교사다. 영남대 전신인 대구대 졸업 후 군생활(ROTC장교)을 마치고 대구 경구중하교를 시작으로 교직에 몸 담아 경북공고를 거쳐 1978년부터 대중금속공고(달성 가창) 교사로 교직을 마감한 서씨는 10년 전부터 도자기에 대해 관심을 갖고 배워 이제 수준급의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평생 가르치는 일을 멀리 할 수 없음인지 교직에서 물러났는데도 여전히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도자기를 배우려는 사회의 저명인사를 포함, 8명을 수하에 두고 있는 것. 서씨는 흙으로 그릇을 빚고 유약을 바르고 굽는 등의 과정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함께 작업하고 서로 말동무가 돼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즐거워한다. 그래서 서씨의 작업실은 사철 밤늦도록 도란도란 이야기꽃이 가득하다.
교직 퇴임 후 무엇을 할까, 고민하고 아이템을 찾던 중에 문득 '도자기'라는 생각에 도자기 전시회나 강습회 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닐 당시 마침 학교 가까운 곳에 공방이 위치, 큰 어려움 없이 배울 수 있었다는 그는 도예가협회에 가입하려고 찾아갔으나 관련학교를 졸업했거나 입상경력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공부에 전념했다. 그후 2004년 대구도예대전에 입상한데 이어 신라문화재, 진주개천대회에서도 입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입상하고 나니까 그 다음 전시회에 무슨 작품을 낼까? 어떤 방법으로 할까? 등으로 고민을 하다 보니까 실력이 늘고 또 열정이 생겨나더군요."
서씨가 사발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건 2005년 무렵이다. 앞서 2003년부터 사발에 대해 공부하면서 테마를 정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방학 때 전라도 광진을 찾아 청자 사발에 반하고 부터다. 마침 사부(師父)인 단국대 예술대학장인 박종훈 교수를 거기서 만나고는 더욱 더 확신을 가지고 열성을 쏟기로 작정했다. 방학을 이용, 전남 광진의 청자문화연구소에 6학기 동안 사발을 배우러 다니기까지 했다.
그후 문경찻사발축제와 한국사발학교공모전에도 입상하고 '2008 한국사발학회' 주최 대회에서는 은상을 받았다.
서씨가 공방에 머무는 시간은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더 늦어지면 독실한 불교신자이자 전통요리 전문가인 부인이 밥을 해서 가져온다. 나이대가 비슷한 학생들도 작업이 늦어지면 공방에서 저녁식사를 해결하곤 한다.
주 3일은 강습생들의 작업을 도와주고, 이틀은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일로 바쁜 그는 공모전을 앞두고는 하루 13~14시간을 작업할 정도로 체력도 좋다. 등산과 스키·수영·골프 등 스포츠로 단련한 몸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작업 성취도와 만족감에 대해 물었다. "이떤 때는 800개를 구워냈는데 작품성을 띠는 건 고작 1개뿐이었습니다. 그것 마저도 썩 맘에 들진 않았죠. 작품성으로 따지면 아마 100대 1 정도 될 겁니다." 그만큼 사발을 만든다는 게 어렵다는 얘기다. "금방 도자기를 시작한 사람도 만들 수 있고 10~20년 한 사람도 만들기 어려운 것"이라며 도자기의 오묘함을 말한다. 도자기쪽은 일본과 중국이 우리 나라를 앞서지만 사발은 가히 따라올 수 없을 정도라고.
자신의 취미·여가활동을 위해서지만 가스가마와 전기가마에다 4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 작업실, 그리고 새로 지은 조립식건물형 공방도 갖추고 있는 서씨는 "평생 소원을 이뤘다"며 싱글벙글이다. 200미터 거리에는 자신이 직접 구운 도자기 전시장이기도 한 조상 대대로 살아온 기와집이 있다.
그렇다고 상업적으로 도예를 하는 것도 아니다. 이곳에서 도예를 배우려는 학생들로부터 받는 돈은 흙값과 가스 및 전기료 등을 합해 1인당 15만원. 사실상 적자다. 사발용 흙은 경남 합천 산청, 그리고 고령 등지에서 직접 캐와서 조달하기 때문이다. 그는 흙을 실어오기 위해 최근 차량을 짐칸이 있는 것으로 교체했다고 귀띔했다.
"10개를 포개도 두께는 20cm밖에 안 되고 넘어질 염려가 없어 안전합니다. 손잡이가 달렸다면 어려운 일이죠. 이게 우리 사발의 장점입니다." 앞으로 10년 동안 건강하게 사발을 만들고 후학들을 양성했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황재성기자 jsgold@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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