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함을 나누는 사람들]사랑의 산타클로스

입력 2008-12-25 06:00:00

세상은 아직 따뜻하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살림살이가 우리 모두를 힘들게 하지만 그래도 변함없이 아낌없는 사랑을 나눠주는 사람들 때문이다. 남보다 잘 나서, 남보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저 베푸는 게 좋은 사람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웃이지만 남다른 사랑을 실천하는 산타클로스들을 만났다.

◆도시락 산타 김정숙씨

지난 17일 (사)한국시각장애인협회 대구지부 달서지회. 사무실 한쪽 주방에서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빨간 앞치마를 두른 김정숙(62)씨가 비빔밥 준비에 여념이 없다. "시각장애인들에게 드릴 점심이에요. 올해부터 급식 준비를 맡아 다른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요리에서 배식까지 전부 책임지고 있죠. 장애인 분들이 즐겁게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행복해지는지 몰라요."

지난 10일 대구시자원봉사 대상을 수상한 김씨는 봉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사실 그는 남에게 베풀 처지가 아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넉넉지 않은 살림에 10년 전 남편을 잃고 아들과 단 둘이 지낸다. "가진 사람일수록 가진 티를 내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누군가에 베풀기보다는 가진 것을 지키는데 급급하죠. 반면 없는 사람일수록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알 수 있어요. 나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거죠."

이제 그에게 봉사는 일상의 삶이나 마찬가지. 매주 월'수'목'토 4일씩 급식 및 도시락 배달 봉사를 하고 있다. "1999년 남편을 잃었어요. 숨진 남편은 10년간 뇌졸중을 앓아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했죠. 그래서인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만 보면 남편 생각이 간절하고, 무조건 도와주고 싶은 거에요." 김씨가 본격적으로 봉사의 세계에 뛰어든 건 2003년 즈음. 달서구 학산복지관에서 도시락 배달을 맡아 지금까지 손수레를 직접 끌며 동네 홀몸노인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말이 쉽지 매주 한번씩 도시락을 배달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동네 구석구석까지 2시간을 꼬박 걸어야 하는 강행군. 그는 "도시락 배달뿐 아니라 홀몸노인의 빨래나 쓰레기까지 살림에 도움되는 일은 뭐든 해주고 있다"며 "밤에도 전화를 걸어 이것 저것 심부름을 시키는 어르신들이 많은데, 그때마다 군말 없이 들어준다"고 했다.

당뇨와 고혈압을 앓고 있는 김씨는 "지난 여름엔 몸이 너무 아파 잠시 쉬려고 했지만 쉴 수가 없었다"고 한다. "봉사할 땐 없던 힘도 다시 생기는 것 같아요. 걸음이 얼마나 빨라지는지 남들은 발통 달린 다리라고 부르죠." 그는 "집에서 잠시 쉬고 싶어도 어찌나 많은 전화가 오는지 도대체 쉴 수가 없고, 오히려 몸이 쑤셔 답답했다"며 "움직일 수 있는 그날까지 봉사하며 살고 싶다"고 미소지었다.

◆요구르트 산타 김지영씨

16일 대구 수성구 지산5단지. 요구르트 아줌마 김지영(38)씨가 할머니들과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 아파트에 홀로 사는 할머니 100여분께 요구르트를 배달합니다. 벌써 2년 반이 흘렀네요. 처음에는 할머니들 목소리가 너무 작아 말도 잘 알아듣지 못했는데, 이젠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어요."

김씨와 할머니들 사이에 생긴 우정은 '홀몸노인 아침문안 인사제' 덕택이다. 구청 지원금으로 홀로 사는 어르신들에게 요구르트를 배달하는 아줌마들은 단지 요구르트만 배달하는 게 아니라 어르신의 안부를 묻고 말벗이 돼 준다. 수성구 24개 동에서만 동별로 3~5명씩 100여명의 요구르트 아줌마들이 홀몸노인 가정을 찾고 있다.

"홀몸어르신들은 사람을 참 그리워 해요. 하루 종일 대화 상대를 찾지 못하니까요. 했던 얘기를 자꾸 반복하시지만 그저 들어주는 것만으로 어르신들은 행복을 느끼죠" 지산5단지 어르신들은 김씨만 보면 자꾸 웃었다. 무표정하던 얼굴에 갑자기 생기가 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요구르트를 배달하다 보니 정이 많이 들었어요. 어르신들 살림살이까지 줄줄 꿸 정도죠. 수도꼭지라도 고장 나면 제가 먼저 관리실에 알려주기도 해요."

중풍을 앓고 있는 박필연(73) 할머니와 김씨 사이는 더욱 애틋하다. 몸이 불편해 잘 움직이지 못하는 박 할머니에겐 1년 365일 매일 얼굴을 보는 김씨가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것. 할머니는 "피붙이보다 더 가깝게 느껴진다"며 "집 열쇠 위치까지 다 가르쳐줬다"고 했다.

김씨는 "요구르트를 배달하다 어쩌다 마주치는 어르신들은 늘 반가운 인사말을 건네며 손에 든 김치며 과일이며 이것 저것 나눠 주신다"며 "물질적인 지원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르신들에게 더욱 필요한 건 말 한마디라도 함께 나눌 '친구'"라고 환히 웃었다.

◆목욕 산타 한국전력 남대구지점 사회봉사단

"2003년부터 대구시립희망원과 인연을 맺었어요. 지금까지 주말이나 휴일을 이용, 2주에 한번씩은 꼭 들렀고 지난해엔 감사패까지 받았죠." 남대구지점 봉사단 안철호(38) 대리는 "단원 90명이 4개조로 나눠 돌아가며 희망원 지체 장애인들을 찾아 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며 "말벗이 돼 주고, 청소와 휠체어 산책을 도와 준다"고 했다.

봉사하는 마음이야 모두 똑같지만 단원들이 육체적으로 가장 힘겨워 하는 건 단연 목욕 봉사. "매번은 아니지만 희망원 직원들을 도와 중증 장애인을 목욕시켜 드리곤 하죠. 이런 분들은 거의 몸을 움직이지 못해 장정 두명이 거들지 않으면 목욕 봉사가 불가능합니다." 사실 목욕 봉사만큼 힘든 봉사도 드물다. 희망원 한 곳에서만 혼자서 목욕하기 힘든 장애인들이 200명을 훌쩍 넘기지만 자원봉사자 수가 턱없이 모자라다.

봉사단원들은 "목욕탕 바닥에 매트를 깔고. 행여 다치지는 않을까 조심스럽게 옮긴 뒤 한 사람은 물을 붓고, 나머지 한 사람은 몸을 씻어 드린다"며 "육체적으로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다"고 웃었다. 하지만 힘든 만큼 보람도 크다. "때를 정성스럽게 밀어 주고, 비누칠로 마무리하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는 것. 밝은 표정의 장애인들을 보면 아무리 힘들어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곤 한단다.

단원들은 "추석이나 설날이면 라면이나 청소기 같은 생필품도 함께 전달해 왔다"며 "예전처럼 자주 찾아가기가 힘들어졌지만 목욕 봉사만큼은 꾸준히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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