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화폐 전쟁

입력 2008-12-23 10:38:28

禍不單行(화불단행), 불행은 한번에 그치지 않는다고 했던가. 해마다 이맘때면 1997년 '12월의 굴욕'을 잊지 말자고 다짐해왔건만 IMF 외환위기 때보다 더하다는 금융위기를 11년 만에 다시 맞은 한국인의 세밑은 우울하다.

그때야 곳간에 달러도 없이 흥청망청 뿌리고 다닌 우리네 잘못이 컸지만, 이번에는 숫제 미국이라는 이웃 형님 잘못 만난 죄(?)로 덩달아 화를 입고 있으니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최근 우리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진 사람이 있으니 중국인 국제금융가 쑹훙빙(宋鴻兵)이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당시 외환위기는 앨런 그린스펀의 '격동의 시대'에 잘 나타나 있다. 미국은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충분한 줄 알았지만 뒤늦게 바닥이 난 것을 알았고 "댐이 무너지려 하고 있다"는 한마디가 외환위기의 출발점이 됐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런데 지금은 문을 닫은 미국의 투자은행인 '페니 메이'와 '프레디 맥'의 고문이었던 쑹은'화폐전쟁'이라는 책에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한국은 97년 금융위기가 닥치자 미국에 구원의 손을 내밀었지만 미국이 그토록 단호하게 거절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사실 미국 내에서는 한국을 도와야한다는 주장이 강했다. 그러나 미국 금융재벌들은 반대했다. 한국경제의 빗장을 열어젖혀 기업을 삼킬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클린턴 대통령은 월가를 대변하는 재무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한국은 IMF 원조를 받기 위해 미국 은행 한국지점 설립을 허락하고, 외국인 주식 소유 지분을 50%로 높였다. 당장이라도 한국의 사냥감을 물어뜯을 판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의 강한 민족정신을 너무 얕잡아봤다. 고립무원에 빠진 한국인은 너도나도 금 모으기 운동에 나섰다. 외국의 채권자들도 금을 흔쾌히 채무상환으로 받아주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한국에서는 대규모 파산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 대기업을 거의 하나도 사들이지 못했다. 그 사이 정부의 노력과 국민의 협조로 한국경제는 빠르게 성장했다."

미국을 겨냥한 비판적 시각이라는 일부의 평도 있지만 한국인의 위기 극복 노력을 새롭게 조명한 점은 되새겨볼 만하다. 우울한 연말, 한줄기 희망의 빛이 되길….

윤주태 논설위원 yzoot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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