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나눔'은 계속된다…'크리스마스 실'

입력 2008-12-20 06:00:00

▲ 우주인 이소연씨를 소재로 한 2008년 크리스마스 실.
▲ 우주인 이소연씨를 소재로 한 2008년 크리스마스 실.

2008년 한 해가 간다. 새로운 한 해를 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사람들의 마음은 왠지 더 바빠진다. 12월이 유난히 아쉬운 것은 비단 시간 때문만은 아니다. 크리스마스와 설날을 통해 헌 해(年)를 마무리하고 새 해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풍속은 많이 변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크리스마스 카드와 연하장으로 아쉬움과 기대감을 서로 나눈다. 이런 카드에는 어김없이 크리스마스 실(Christmas seal)이 붙어있었다. 종이 대신 인터넷으로 카드를 보내는 통에 풍속은 달라졌지만 크리스마스 실은 2008년 올해에도 어김없이 발행됐다. 우리나라에서 7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크리스마스 실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결핵퇴치 위한 사랑의 나눔' 실천

크리스마스 실의 발행목적은 간단하다. '작은 정성의 성금을 모아 결핵으로 고통받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것이다. 실 한장(300원)의 가격은 '티끌'이지만 전 국민의 정성이 쌓이면 '태산'이 된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실 모금액은 62억2천만원이나 됐다. 지난 1985년 10억원대로 진입한 모금액은 2000년 60억여원을 기록한 뒤 줄곧 60억원대를 유지해왔다. 이 돈은 결핵퇴치를 위한 사업에 사용된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문제가 생겼다. 인터넷과 휴대전화 사용이 일반화하면서 카드·연하장에 크리스마스 실을 붙여 보내던 풍습이 변했기 때문이다. 특히 크리스마스 실 판매량의 약 60%를 차지하던 초·중·고교 학생들의 구매가 계속 줄고 있다.

올해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학생들 중에는 심지어 '학교에서 크리스마스 실을 강매한다'며 학교나 교육청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항의한다. 학급마다 배당되는 크리스마스 실을 팔아야 하는 교사들의 반발도 만만찮다. 대한결핵협회 대구경북지부 행정지원팀 서현정 씨는 "기업체 후원은 계속되고 있지만 개인별 판매는 힘들다. '연필이나 지우개 같은 다른 상품을 제작하라'거나 '실을 없애고 성금만 받으라'는 요구도 많다"고 했다. 수요자들의 욕구에 맞게 변화해 달라는 말. 협회는 이에 ▷스티커 방식 제작 ▷전자파 차단 스티커 ▷전자 크리스마스 실 ▷휴대전화 크리스마스 실 등의 다양한 방식을 개발했지만 결과가 썩 좋은 편은 아니다. 부착형 크리스마스 실이 여전히 대한결핵협회의 상징으로서 활동 기금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도안 자체를 혁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2003년 '십이지간'이나 2004년 '세계의 민속의상' 시리즈는 큰 인기를 끌었고 모금액도 각각 역대 1,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것도 단순한 일이 아니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도안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과 우주과학기술'도 반응은 엇갈린다. '학생들의 정서와 동떨어졌다'는 의견도 있지만 우주에 관심이 많은 초교생 사이에 인기를 끌어 추가 주문을 하는 학교도 있다. 더 큰 문제는 '크리스마스 실은 쓸모없는 것이다'라거나 '결핵 환자는 없다'는 사람들의 인식이다. 이 때문에 크리스마스 실의 구매도 점점 감소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결핵 발생률과 사망률 1위다. 지난해만도 3만4천여명이 결핵에 걸렸고 2천300여명이 숨졌다. 인구 10만명당 4.9명꼴이다. 올해 결핵 유병자는 8만5천명으로 추정된다. 서씨는 "한국민은 결핵 발생 확률이 높은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다. 그리고 결핵은 한 번 발병할 경우 6~9개월 동안 꾸준히 투약해야 하는 치료하기 힘든 병"이라며 결핵이나 크리스마스 실에 대한 시각의 전환을 촉구했다.

30대 직장인 한모씨도 이와 관련 "어릴 적 일부러 용돈을 털어서라도 '남을 돕는다'는 심정으로 구매했다. 최근의 강매 논란을 지켜보니 씁쓸하기만 하다"고 했다. 서씨도 "이웃돕기 성금을 내면 그 징표로 사랑의 열매를 준다. 이는 성금의 규모에 상응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비해 크리스마스 실은 판매가에 상당하는 가치가 있다"며 '이웃사랑 실천'에 더 의미를 부여해 줄 것을 당부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 크리스마스 실의 역사

크리스마스 실은 1904년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우체국장 아이나르 홀벨(Einar Holbøll)의 아이디어로 시작했다. 당시 유럽은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 결핵이 전 유럽에 퍼져 있었다. 홀벨은 크리스마스와 연말에 우체국에 많이 쌓이는 성탄카드와 우편물에 우표 모양의 실을 저렴한 값에 팔아 붙이면 결핵으로부터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구할 수 있는 기금을 마련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국왕(크리스천 9세)에 청원해 국민의 열렬한 지지와 성원을 얻어 1904년 12월 10일 세계 최초의 실을 발행할 수 있었다. 그 뒤 세계 각국에서 이를 발행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에밀리 비셀(Emily Bissel)이 소개해 1907년 윌밍턴 우체국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동양권에서는 필리핀이 1910년 처음으로 발행했다. 일본에서는 한 민간잡지사가 1925년 12월 발행하기 시작해 이듬해 결핵예방회에서 본격적으로 이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실이 발행된 것은 1932년 12월 3일 황해도 해주 구세결핵요양원장으로 있던 서울 출생의 캐나다인 선교의사 셔우드 홀(Sherwood Hall)에 의해서였다. 조선에서 실 판매는 사람들의 인식 부족으로 쉽지 않았다. 결핵을 앓던 한 여인이 홀을 찾아와 "실을 가슴에 붙였는데도 낫지 않는다"고 호소한 것은 대표적인 일화이다.

조선에서 실 판매는 홀이 1940년 스파이 혐의로 일본헌병대에 체포된 뒤 추방당하면서 9년 동안 발행이 중단됐다. 실의 역사는 해방 이후인 1949년 문창모 박사가 주도해 한국복십자회에서, 1952년에는 한국기독의사회에서 발행하면서 계속됐다. 그러나 실 운동이 범국민적인 성금운동으로 착수된 것은 1953년 대한결핵협회가 창립되면서부터였다.

♠ 크리스마스 실 이모저모

-한국 최초 크리스마스 실 도안은 남대문이 아니었다

1932년 발행된 실의 도안은 남대문. 셔우드 홀은 한국 최초의 실 도안은 한국인에게 좋은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그림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거북선을 소재로 했다. 그러나 일제치하에서 거북선 그림은 당국으로부터 발행 허가를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한 일본 외교담당자의 암시에 따라 서울의 상징물인 남대문으로 바뀌었다. 남대문 실은 1927년 재판됐다. 첫해 실은 1매에 2전이었으며 총 850원을 모금했다. 거북선 도안은 1967년도에 등장했다.

-일제에 압수된 실도 있다

1940년 '때때옷 입은 어린이' 실은 당국의 허가를 받아 인쇄를 완료하고 전국으로 배송하려다가 일제에 의해 압수됐다. 배경의 산이 특정산(금강산)이며 발행연도를 서기로 표기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도안자인 엘리자베스 키스는 배경의 산을 원근법에 따른 축소모양으로 대문 안으로 들어오게 그렸다. 발행연도는 발행 9번째의 해였으므로 '9차 연도(ninth year)'로 수정했다. 셔우드 홀이 추방당한 것도 같은 해였다.

-다른 모금 방식

실 판매 방식에는 직접 판매 외에도 우편모금 방법도 있다. 1953년 처음 실시됐는데 학교와 교회를 중심으로 보건소, 의원, 단체 등에 실 모금 취지문과 함께 우편으로 발송했다. 그러나 실에 대한 인식이 미천하던 시절이라 상당수가 봉투조차 뜯기지 않은 채 반송됐다. 특별모금 운동도 있다. 극장에서 입장객의 입장료에 일정액을 첨가하는 극장모금(1962~1973), 고궁 입장료에 첨가하는 고궁모금(1963~1972)이 있었다. 복십자 엽서모금(1969~1973)이나 우표첨가모금(1974) 방식도 실행됐다.

-도안 현상 모집

최근에는 실 도안 모집을 현상해 당선작을 쓰고 있다. 새로운 소재를 찾고 좋은 작품을 고르고자 하는 목적에서다. 처음 현상모집을 한 해는 1955년. 여기에서 변종하 화백이 도안한 '쌍학'이 당선됐다. 그 외 안영훈, 최충, 이근홍, 김광배 등 4명의 작품이 가작으로 입선했다. 1972년 도안(아름다운 풍경) 당선자인 김현씨는 학생시절 동생 이름(김혜성)으로 응모했다. 김씨는 당선 상금으로 학교 등록금 냈다는 일화가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 작가이기도 한 김씨는 이후에도 4차례(1986~88·2000)나 더 실 도안을 맡았다. 1976년에는 전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아동화를 현상공모한 적도 있다. 총 711점이 접수됐고 특선 1점·입선 10점이 선정됐다.

-'아기공룡 둘리'와 실

2001년 실의 주인공은 바로 '아기공룡 둘리'.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회를 앞두고 세계인의 축구축제가 성공리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기획됐다. 만화가 김수정씨는 서울의 상암월드컵경기장을 배경으로 둘리와 친구들이 축구하는 모습을 캐릭터화해 실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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