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미국의 어려운 처지와 우리의 대북정책

입력 2008-12-16 06:00:00

美 차지정부 대북정책 안개속/南北공조 복원 적극 모색해야

최근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한 세미나에 참석하러 미국 워싱턴을 다녀왔다. 불과 며칠 머무는 동안 지켜본 미국의 공중파, 케이블 방송은 온 종일 미국 3대 자동차 회사들에 정부가 구제금융을 지원해야 하는지에 대한 찬반 의견을 내보내고 있었다. 시카고의 한 공장 노동자들이 갑작스런 해고 통보에 반발하는 피켓 시위를 벌이는 장면도 수시로 화면에 비쳤다. 미국의 대도시에서 노숙자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단신도 눈에 띄었다. CNN 방송은 최근 몇 달 사이에 실업자 수가 급증해 올해 실직자 수가 2차 대전 이후 최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버락 오바마 신 행정부의 대외정책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한나라당 한·미 관계특위 방미단을 이끌고 돌아온 정몽준 최고위원이 전한 "미국은 상처입은 사자, 라이온 킹과 같았다"라는 비유는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었다. 경제가 바닥에 나뒹굴면서 강대국으로서의 자존심이 손상되었고, 전쟁 수행 능력도 크게 훼손된 것이 현재의 미국이었다.

필자가 현지에서 만난 한반도 전문가들의 반응도 비슷비슷했다. 오바마 새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의 전문가는 손가락을 하나씩 꼽는 제스처를 보이면서 "첫째도 경제(economy), 둘째도 경제, 셋째도 경제"라고 말하곤 했다. 국내 일각의 기대와 달리 한반도 문제가 우선 순위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대외정책 가운데 굳이 우선 순위를 꼽으라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에서 다시 준동하고 있는 테러조직과의 전쟁이 언급된다. 미국은 이처럼 자신의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데 온 힘을 집중하고 있다.

우리도 미국의 처지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우리 역시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데다, 북한 문제도 갈수록 꼬이고 있는 터라 경제와 안보 측면에서 2개의 전선이 형성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도전들을 이제 우리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여전히 미국, 일본, 중국 등 주변국과의 공조는 경제와 안보 문제 해결을 위해서 꼭 챙겨야 할 과제다. 그렇지만 이전과는 달리 특정 국가에 의존하는 것은 결코 현명치 않아 보인다.

남북관계는 더욱 그렇다. 남북한 모두가 주인의식을 갖고 문제해결을 모색하지 않는 한 특히 미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북한이 미국의 이해관계를 보다 직접적으로 훼손시키지 않는 한 적어도 상당 기간 북한 문제는 방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바마측 인사들은 특히 북한 핵문제는 중동의 현재적 위험도에 비해 한 수 아래의 관리가능한 변수로 평가하고 있는 듯하다.

비슷한 맥락에서 최근 미국 합동군사령부(USJFCOM)가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명기한 연례보고서를 발간한 것이나, 이어 국가정보위원회(NIC)의 보고서도 북한을 핵무기 국가로 기술한 것 등도 북핵 문제의 중장기적 접근을 암시한 것으로 해석되며, 다만 단기적으로 핵물질을 다른 국가나 단체로 이전하는 것을 막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출 것임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일각에서는 "핵 한두 개 정도는 용인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식의 견해들이 나왔던 터라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명기한 것은 놀랄만한 사건이 아닐 수도 있다. 미국은 북한에 핵보유국의 지위를 부여한 것은 아니라고 해명하지만 북핵 문제가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갈림길에 서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국가 존망이 걸린 북핵문제의 장기화는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남북한 모두 미국만 쳐다보면서 시간을 보내기에는 일분 일초가 너무 아깝다. 더구나 거물급인 클린턴 힐러리 상원의원이 국무장관으로 내정되어 있어 지난 대선 때 나왔던 대북 정책관련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의 전향적 발언들이나 정책 구상들은 새롭게 재정립될 가능성이 크다. 결론적으로 현 단계에서 우리는 미국 새 정부의 대북정책 밑그림을 예상하기 어렵고, 당분간 기다리면서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미국 차기 정부의 대북정책 밑그림도 안개 속이고, 남북관계의 악화로 북한 속내도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블랙홀에 들어가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한·미 공조가 여전히 북한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핵심 장치이긴 하지만 남북 공조의 복원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우리가 노력하지 않는 데 미국이 자신들 발등의 불을 끄지 않은 채 한반도로 달려올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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