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醫窓)] 행복지수

입력 2008-12-15 06:00:00

고대에는 질병을 신이 내린 것으로,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여겼다. 그러나 2천500년 전 히포크라테스 시절부터는 어떻게든 원인을 찾고 해결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시작됐다. 최근까지 수많은 사람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의학은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뤘고, 그 결과와 증거로 나타난 것이 바로 늘어난 평균 수명이다. 사실 아직도 힘겨운, 암과 의사들의 오래된 싸움도 얼마 전까지는 대부분 생존기간의 연장, 즉 '삶의 양(量)'에 초점을 두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고통 없는 삶, 품위 있는 삶이라는 '삶의 질(質)'은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 형편이었다. 그랬던 것이 치료의 방법이나 결과가 좋아지면서 요즘은 '삶의 질'도 의학의 여러 분야에서 뒤늦게나마 화두로 떠오르는 추세다. 거기에다 병으로 고통스럽고 무의미한 상태의, 단순한 삶의 연장은 원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의 주장도 거세어지고 있어 '품위 있는 죽음'이나 안락사 등의 문제까지 첨예하게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병이 아닌 일반적인 우리네 삶의 경우는 어떠한가? 당연히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있고 그것을 평가하기 좋도록 수치로 나타내려는 시도가 많이 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사뭇 흥미롭다. 영국의 싱크탱크인 신경제학재단(NEF)은 2006년에 삶의 만족도와 평균 수명, 생존에 필요한 면적과 에너지 소비량 등의 환경적인 여건 등을 종합해 178개국의 행복 지수 순위를 발표했으며, 이 조사에서 한국은 하위권인 102위에 랭크됐다. 그런데 우리만 이렇게 낮을까? G-7(선진 7개국) 국가를 보면 이탈리아가 66위로 가장 높았고 독일 81위, 일본 95위, 영국 108위, 캐나다 111위, 프랑스 129위, 미국이 150위를 차지했다. 반 이상이 우리나라보다 낮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행복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어딜까? 엉뚱하게도 호주 부근의 작은 섬나라, 이름도 생소한 인구 19만명의 비누아투가 1등이었다. 그 뒤로는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도미니카, 파나마 등의 중남미에 위치한 가난한 나라가 10위권 안에 포함됐다. 그 이전에 다른 단체들의 조사에서는 방글라데시가 1위를 했고 멕시코가 2위를 차지했다는 기록도 두 번이나 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결국 잘 산다고 행복한 것은 절대 아니라는 얘기다.

지난해 멕시코에 갔을 때 현지에 살고 있는 한국인 가이드가 이렇게 말했다. "이 나라 사람들은 굉장히 낙천적이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행복한 국민으로 선정됐답니다. 그래서 그런지 심각한 병도 없다고들 해요." 사실 병에 대한 이야기는 근거가 없고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렇지만 사실인가 아닌가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그들이 그렇게 믿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보다 더 잘 사는 우리가 왜 덜 행복한지도 어려운 한 해를 보내면서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정호영(경북대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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