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경주 양동마을

입력 2008-12-11 14:04:11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에서 조선시대의 흔적을 만나는 기분은 색다르다. 500년 전부터 동성 취락을 형성해 온 경주 강동면 양동마을은 조선 중기 이후 다양하고 특색있는 우리나라 전통가옥구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고건축의 전시장 같다. 고색 창연한 기와집과 아담한 초가가 돌담길로 정겹게 이어진 이곳은 찾는 이의 마음을 푸근하게 감싸주며 어린 시절 고향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양동마을은…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대구경북의 대표적 민속촌으로 손꼽히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반촌(班村)이다. 여강(驪江)이씨와 월성(月城)손씨가 양대 문벌을 이루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왔고, 조선시대 전통 문화와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우리나라 최고 명당이라 일컬어지는 독특한 지세(地勢)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마을의 배경이자 주산인 설창산의 문장봉에서 산등성이가 뻗어내려 네줄기로 갈라진 능선과 골짜기가 말 물(勿)자형을 이룬다. 그 시대 보통의 마을들이 배산임수의 남향받이에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에 비해 勿자형으로 뻗은 구릉의 능선이나 중허리에 가옥들이 들어서 있고, 가옥 배치가 듬성듬성한 데다 숲이 우거져 가까이 접근해야만 그 자태가 드러난다. 勿자형 4골짜기는 각각 내곡·물봉골·거림·하촌이라 불리며 기와집 54호마다 가립집이라 부르던 초가집이 3~5채씩 딸려 있는 구조가 이채롭다.

양동마을 답사코스

양동마을에 들어서면 독특한 지세에 먼저 놀라고 그 규모에 두번 놀란다. 겉으로 보기엔 아담한 마을 같지만 이곳저곳 꼼꼼히 둘러보려면 한나절이 벅차다. 양동마을 정보화센터에서 추천하는 답사코스는 모두 6개. 답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20분~1시간 남짓. 둘러보고 싶은 곳을 중심으로 미리 코스를 정해야지 무턱대고 마을에 들어갔다간 뭐가 뭔지 모르기 십상이다. 다음은 마을 전체를 천천히 감상하기에 제격인 대표적 답사 코스.

물봉골코스:무첨당~설천정사~물봉고개(1시간)

물봉골은 넓은 안강들과 안락천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그림 같이 서 있는 초가집 풍경이 더해져 기념사진의 배경으로 그만. 보물 제411호의 무첨당은 1508년에 지은 여강이씨 종가로, 별채의 기능을 중요시한 간결하고 세련된 솜씨의 주택이며 산 언덕 숲속에 위치한 설천정사 또한 건물의 정교함이 돋보인다.

내곡코스:근암고택~서백당~내곡정(1시간)

서백당은 양동마을에서 반드시 둘러보아야 할 곳이다. 마을의 입향조라 불리는 손소 공이 성조15년(1454년)에 지은 월성손씨의 종가집으로, 집터를 잡아준 풍수가가 설창산의 혈맥이 응집돼 세 명의 위대한 인물이 태어나리란 것을 예언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손소 공의 둘째 아들 손중돈 선생과 문원공 회재 이언적 선생이 바로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오는데, 마지막 한 사람은 아직 미탄생이라 한다. 수령 540년을 자랑하는 서백당 향나무는 마치 분재처럼 꾸불꾸불 꼬여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향단코스:관가정~향단~수운정(1시간)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건물이 향단이다. 화려한 지붕구조를 가진 아름다운 건물로 회재 이언적 선생이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할 때 모친의 병을 돌볼 수 있도록 중종 임금이 하사한 집. 당시에는 흥(興)자 모양의 99칸이었으나 지금은 허물어져 56칸만 남아 있는데, 외부구조 못지 않게 내부구조 또한 세밀하고 빼어난 주택이라 내로라하는 건축학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관가정과 수운정은 양동마을 답사를 처음 시작하고 마무리하기에 안성맞춤. 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보듯 자손들이 커가는 모습을 본다는 뜻의 관가정은 조선 성종때 명신 우재 손중돈 선생이 분가해 살던 집으로, 형산강과 경주를 품어 안는 경관이 일품이며, 마을 외곽 서북방의 높은 암석 위에 세워진 수운정은 야경을 감상하기에 제일 좋다.

★흥덕왕릉

양동마을에서 10분 거리의 흥덕왕릉은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만큼 뜻밖의 감흥을 주는 곳이다. 주변을 둘러 싼 소나무숲이 절경인데, 왕릉을 중심으로 군락을 이룬 수천 그루의 육송은 휘어지고 비틀어져 어느 하나 똑바로 선 것이 없다. 왕릉 앞에는 이끼 낀 한 쌍의 문인석과 무인석이 이채롭다. 특히 곱슬머리에 눈이 깊숙하고 코가 큰 무인석은 서역인을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삼국유사 기록에 따르면 전남 완도에 청해진을 두고 장보고를 대사로 삼아 해상권을 장악한 신라42대 흥덕왕은 요즘에도 흔치않을 순애보의 주인공. 서기 826년 왕이 되어 836년 죽을 때까지 11년 동안 재위한 흥덕왕은 임금이 된 첫해에 왕비 장화부인을 잃었고, 많은 신하들이 재혼을 권했지만 평생을 홀로 지냈다. 신하들은 '나 죽거든 아내와 함께 묻어달라'는 왕의 유언에 따라 흥덕왕과 왕비를 합장했는데, 흥덕이라 새긴 비의 조각이 나온 1977년에서야 흥덕왕릉의 존재가 밝혀졌다. 안강읍을 거쳐 포항 방면 68번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흥덕왕릉 입구' 팻말이 나온다.

★독랑당

양동마을에서 대구 방향으로 10km쯤 떨어져 있다. 양동마을 서백당에서 태어나 이름을 떨친 회재 이언적 선생이 낙향했을 때 지은 사랑채로, 낮은 단 위에 세워진 정면 4칸, 측면 2칸의 건물이 여덟팔(八)자를 이루고 있고, 건물 옆쪽 담장에는 좁은 나무로 살을 대어 만든 창을 달아 앞 계곡의 냇물을 바라보게 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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