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정현주의 휴먼 토크]거울만 보는 사람

입력 2008-12-11 09:14:42

내게는 6살 된 예쁜 여자 조카가 하나 있다. 하는 짓이 얼마나 앙증스러운지 보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사랑스럽다. '다시 태어나면 저런 딸을 꼭 낳고 말리라'는 비장한 결심을 하게 하는 도도한 조카인데 하루종일 거울을 끼고 살아 별명이 '거울 공주'다. 그 거울로 찡그리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머리에 나비핀도 꽂고 장미꽃 헤어밴드도 해보고 공주 귀걸이도 걸어 부친다. 하루종일 거울에 자신만 비춰 본다. 남이 끼어들 틈이 없다.

거울은 은칠을 한 유리이다. 그러나 유리와는 정말 다르다. 거울은 자신만 보이지, 거울 뒤에 있는 남은 보이지 않는다. 유리는 자신은 보이지 않지만 유리 너머의 타인을 잘 투영한다. 현대사회가 복잡하고 바빠질수록 사람들은 거울만 보고, 유리는 외면한다. 오로지 자신에 대한 관심만 확대시키고, 이웃사랑의 시작인 남에 대한 관심은 전혀 갖질 않는다. 사람들은 타인으로부터 사랑보다 오히려 더 처절하게 자신에 관심을 갈망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얼마 전 신문을 통해 특이하지만 아쉬운 판결기사를 접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에서 있었던 일인데 바닷가를 거닐고 있던 한 여인이 로프에 걸려 그만 파도에 휩쓸리고 말았다. 수영이 미숙했던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구조 요청을 했다. 그녀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가까이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던 젊은이 한 사람뿐이었다. 그런데 그 젊은이는 생사의 기로에서 간절히 도움을 청하고 있는 그녀를 외면한 채 유유히 일광욕만을 즐겼고, 바다에 빠진 그녀는 허우적대다가 결국 죽고 말았다.

소송의 천국인 미국답게 익사자의 가족들은 그처럼 무관심했던 젊은이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그러나 현행법상 그 젊은이에게는 법적 책임이 없는 것으로 판결 났다. 비록 일광욕을 즐기던 그가 법적으로는 죄가 없는 사람일지 몰라도 자신의 거울만 보는 이기적인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유리 너머 이웃을 보지 않은 무관심이 이런 경우는 타인을 죽음으로까지 몰수 있는 양심의 범죄를 초래한 것이리라.

한 통계에 따르면 10대의 가장 큰 관심은 이성, 20대는 섹스, 30대는 돈, 40대는 사업, 50대는 권력, 60대 이상은 건강이라고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이 다각도로 조명돼 여러 가지 조건으로 나타난 통계로 보여진다. 이를 보면 어는 연령대에서도 이웃에 대한 관심은 없다. 이웃 없이 나만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이웃과 더불어 행복할 것인가? 이것이 한 개인의 삶의 태도와 방향을 결정한다.

금융위기에 따른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우리들 마음은 어느 겨울보다 위축돼 있다. 우울의 음산한 그림자가 소리 없이, 그리고 빠른 속도로 가까이 다가와 슬며시 서민들의 삶까지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가장 힘이 되는 것은 서로를 향한 조그만 몸짓이 아닐까 싶다. 피리를 불며 기뻐하는 이웃과 함께 춤추고, 구멍 난 가슴(?)으로 울고 있는 이웃과 함께 가슴 치는, 사소한 돌아봄이 이 겨울 무관심으로 추워하는 우리 이웃에게 영혼의 어루만짐이 되지 않을까?

053)253-0707, www.gounmi.net

(고운미피부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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