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인어공주 세계인 끌듯…대구도 스토리를 입히자

입력 2008-12-11 06:00:00

[대구 도심 재창조] ⑦골목이 경쟁력이다<하>

▲ 경상감영공원 징청각 모습. 400년의 역사를 담고 있는 경상감영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 오지만 아쉽게도 대구 시민들의 이야기로 공유되지 못하고 있다.
▲ 경상감영공원 징청각 모습. 400년의 역사를 담고 있는 경상감영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전해 오지만 아쉽게도 대구 시민들의 이야기로 공유되지 못하고 있다.
▲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진골목 모습. 대구의 근대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골목으로 근대 문화재와 전통 한옥들이 많이 남아 대구의 대표적인 관광상품이 될 만하다.
▲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진골목 모습. 대구의 근대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골목으로 근대 문화재와 전통 한옥들이 많이 남아 대구의 대표적인 관광상품이 될 만하다.
▲ 대구 도심 곳곳에 담긴 많은 이야기들은 대구의 브랜드를 세계로 알리는 데 중요한 밑바탕이 된다. 대안천주교회 앞에 있는 조선시대 형틀.
▲ 대구 도심 곳곳에 담긴 많은 이야기들은 대구의 브랜드를 세계로 알리는 데 중요한 밑바탕이 된다. 대안천주교회 앞에 있는 조선시대 형틀.

▶세계는 스토리 발굴 중

덴마크의 코펜하겐은 세계인들에게 안데르센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코펜하겐을 방문한 관광객들은 가장 먼저 시청 앞에 있는 안데르센 동상을 본 뒤 바닷가에 애처롭게 앉아 있는 인어공주 동상을 찾아간다. 고작 80㎝에 불과한 인어공주 동상은 페인트를 뒤집어쓰고, 팔이 잘려나가는 등 여러 차례 수난을 겪어 더 측은해 보인다. 그래도 사람들은 볼품없는 인어공주 동상에 실망하지 않는다. 홍경구 대구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는 "사람들은 오히려 가슴 아픈 사랑을 떠올리며 안데르센의 동화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든다"며 "인어공주라는 스토리 하나로 도시 전체의 가치를 높인 케이스"라고 했다.

안데르센 마케팅에는 덴마크 정부까지 나섰다. 2005년을 안데르센의 해로 정하고 400억원 가까운 예산을 각종 기념사업에 투자했다. 생가를 다시 복원하고 연극, 무용, 오페라, 영화, 드라마, 출판 등 문화 전 분야에 걸쳐 대대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안데르센 전시는 덴마크 왕실의 별궁 로젠버그 성에서 열려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을 불러들였고 한국과 중국, 영국 등으로 세계 투어를 벌이고 있다.

이 같은 사례는 세계 곳곳에서 흔한 이야기가 됐다. 흡혈귀 드라큘라 백작의 이야기로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루마니아 중부도시 브라쇼브, 화가 폴 세잔을 내세워 세계적인 문화관광지를 만들어가는 프랑스 엑상 프로방스, '로미오와 줄리엣'을 테마로 연인의 도시임을 자랑하는 이탈리아 베로나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도 스토리텔링을 통한 도시 알리기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전주시의 경우 한옥마을 이야기 등 다양한 스토리 구성과 발굴, 전달 시스템을 만들어 이야기가 있는 관광 홍보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역사적인 인물을 이용한 마케팅도 같은 차원이다. 홍길동 도시를 만드는 장성, 장보고 역사공원을 만드는 완도, 춘향 마케팅으로 유명한 남원 등 경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봉화군은 춘향전의 이몽룡 캐릭터를 분석해 지역의 역사자원과 연계시켜 봉화군 이미지 마케팅을 벌인다는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이는 우리 생활이 그만큼 스토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갈 때도 우리는 그 식당의 주인과 음식에 얽힌 사연, 에피소드 등을 떠올린다.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현재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넓은 범주에서는 스토리다.

▶스토리가 도시 브랜드를 만든다

도시에서의 스토리는 무언가를 새로 만들고 지어내는 게 아니라 주민의 생활, 도시의 역사, 시대의 일상을 담는다. 이것이 콘텐츠가 되어 기념관, 박물관, 전시장 등과 만나면 방문객이 다시 찾고 싶은,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있는 도시가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스토리는 도시 전체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고 다른 도시와 차별화시킨다.

'컬러풀 대구'라는 표현은 대구를 알리는 중요한 슬로건이지만 대구만의 브랜드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해 보인다. 대구만의 이야기가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단순히 이야기를 모으는 일이 아니라 구성과 연출을 포괄해야 한다. 그래야 호기심이 생기고 호감을 갖는다. 도시의 스토리화를 위해 다양한 요소를 연계시키는 역할은 지방자치단체의 몫이다. 전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며,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경북대 경영학부 이장우 교수는 'CSO(Chief Storytelling Officer' 개념을 제시했다. 도시 전체의 스토리를 구성해 어떤 도시냐라는 것을 규정하는 역할을 가진 전문가를 말한다. 많은 도시들이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는 도시디자인이나 경관사업 등에도 스토리를 더해야 진정한 도시 브랜드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가 도시 경쟁력이 되는 시대"라며 "대구의 경우 도심이 보유하고 있는 많은 이야기들을 제대로 구성하고 연출하면 대구만의 차별화된 브랜드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스토리의 보고인 대구 도심 골목들은 대구 브랜드의 밑바탕이 된다. 거기에 담긴 이야기들로도 얼마든지 세계인의 보편적 정서를 울릴 수 있다. 골목의 작은 집, 돌 하나도 스토리를 담는 순간 콘텐츠가 된다. 골목에는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거기에 깃든 사람들이 만들어온 삶의 흔적들이 녹아 있다. 골목의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 단순히 과거의 원형을 보존하는 차원이 아니라 현재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어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윤순영 중구청장은 "골목길에 스토리를 입혀 도심을 재생하는 방향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하고 있으며 이를 실천할 계획"이라고 했다. 문제는 관련 기관이나 단체의 협조를 이끌어내고 시민들의 참여를 북돋우는 일이다. 취임 초기 윤 청장은 대구시 교육청을 찾아가 '이야기가 있는 동네 만들기' 프로젝트를 제안했다고 한다. 학교와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할아버지로부터 듣는 옛날 이야기, 고전과 전설 등을 수집하고 구전동화 아카데미나 낭송대회 등을 개최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시교육청이 필요성을 충분히 느끼지 못했고, 예산 등의 이유로 성사되지 못했다. 윤 청장은 "도심 재창조와 스토리텔링에 대한 이해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므로 앞으로 많은 사업들을 대구시나 대구시 교육청 등과 함께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특별취재팀 김재경·서상현기자 사진·이채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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