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대구 달서구청 1층 로비. 평소 같으면 주민등록등·초본, 여권발급 등 구청에 볼일을 보러온 시민들로 북적이던 이곳에 콘트라베이스, 바이올린, 플루트 등 악기 하나씩을 든 20여명의 연주자들이 나타나면서 즉석 공연장으로 변했다.
"즈드라스뜨부이째(안녕하세요)."
지휘자 즈라자예버 알렉산드르(64)씨의 인사말과 함께 시작된 오케스트라 연주. 색다른 풍경에 몰려든 시민들은 귀를 쫑긋 세우며 곡이 끝날 때마다 박수를 쳤다. 40여분의 연주가 마무리됐을 때는 여기저기서 "앙코르!" 소리가 터져나왔다.
이날 콘서트를 연 이들은 러시아 사할린의 '유즈노사할린스크 시립오케스트라'. 민족통일대구시청년협의회 초청으로 7일 수성아트피아에서 대구시민에게 러시아 선율을 선보였던 이들이 대구시민을 위한 깜짝 공연을 펼쳤다. 2005년 매일신문사 초청으로 사할린에서 한국으로 영구 귀환한 고려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대구를 찾은 후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사할린주 유즈노사할린스크시에서 1999년 창단한 이 오케스트라는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지역을 돌며 10년째 고려인의 삶과 애환을 정교한 앙상블로 전하고 있는 러시아 사할린 최고의 명문 오케스트라다.
특히 이번 방문은 내년에 창간 60주년을 맞는 사할린 유일의 한글신문인 '새고려신문'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이 신문이 명맥을 이어가기를 바라며 후원하기 위해 먼 길을 날아왔다. 민족통일대구시청년협의회 하태균 회장은 "이민 1, 2세대가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면서 민족 정체성과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새고려신문'마저 흔들리고 있다"며 "음악을 통해 고려인의 삶과 혼을 알리기 위해 공연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오케스트라는 러시아 가요 '백만송이 장미'와 하차투리안 작곡의 '칼의 춤' 등을 연주했고, 소프라노 래프시나 옥사나(28·여)씨는 아리랑을 편곡한 '신(新) 아리랑'을 불러 숙연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고려인 3세 바이올리니스트 김인나(24·여)씨는 "일제시대 때 한국에서 사할린으로 건너온 할아버지·할머니를 통해 아리랑을 처음 접했다"며 "대구시민들과 음악을 통해 같은 민족으로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돼 즐겁다"고 했다.
공연을 지켜본 주민 이윤화(39·여)씨는 "구슬픈 아리랑 선율이 꼭 고려인들의 삶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 한국과 사할린 간에 민간 차원에서 더 많은 교류가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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