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달력 테마는 '스트레스 해소'

입력 2008-12-06 06:00:00

달력에 대한 단상

2008년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 문득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달력은 한 장만 남은 걸까, 열세 장이 남은 걸까?' 생뚱맞은 질문 같지만 논리는 있다. 내년 달력이 하나 둘 들어오다 보면 올해 달력은 일찌감치 쓰레기통행이 되기 싶다. 새 달력에 대부분 올 12월이 포함돼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기업은 물론 개인들도 이제 새 달력 마련에 분주하다. 우직하고 듬직한 소띠 해만 열리기를 기다리는 2009년 달력의 세계를 들여다보자.

◆불황과 달력

달력은 1960, 70년대 경제발전 과정에서 지방유지나 국회의원 지망생들이 얼굴을 알리기 위해 자신들의 이력과 사진을 넣어 한 장에 12개월을 함께 넣은 달력을 돌리면서 일반화했다. 당연히 '달력 인심'도 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세계적인 금융 위기에 올해 달력 인심은 유난히 쌀쌀하다. 대구시 중구 남산동 인쇄골목의 인쇄소도 연말특수는 사라졌다. 인건비와 종이·잉크값 등 재료비도 해마다 30~40% 정도 껑충 뛰는 상황이다. "기계나 기능장을 놀릴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기계를 돌린다"는 하소연도 들린다. 일감이 격감해 인력을 줄이고 기계를 팔려고 내놓은 인쇄소도 있다. 주인 1명만 붙어서 일하는 곳도 생겼다고 한다. (주)대성카렌다 김재국 대표는 "지역 수주가 줄어 온라인을 통해 서울 등 수도권에서 주문을 받고 있다"며 "불경기로 인해 부수가 많은 곳은 단가가 조금이라 싼 것을 찾고 있다"며 달라진 경향을 전했다. 실제로 여러 업체의 달력을 보면 크기나 발행부수를 줄인 것이 많다. 은행권도 사정은 마찬가지. LG전자는 지난해 명화를 사용한 것과 달리 자사 이미지 광고를 사용키로 했다. 비너스는 모델 없이 자사 제품 사진만으로 달력을 채웠다.

불황에 달력 내용물도 달라진다는 소식이다. 우울한 심정을 털어내기 위해 스트레스를 해소해 줄 시원한 느낌의 대상이 인기를 끌고 있다. 오비맥주가 섹시한 레이싱모델을 기용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산을 주제로 했고 금강제화는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자연과 동물사진을 담기로 했다. 코오롱스포츠는 세계 5대륙 '오지탐사대'의 생생한 탐사 모습을 실어 도전정신을 강조했다. 이에 비해 외식업체들은 무료 쿠폰을 담은 탁상용 달력으로 '달력 마케팅'을 펼치며 손님을 모으기 위한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역기업, 회화가 대세

최근 기업용 달력으로 명화가 단골 메뉴이다. 지역 기업들도 회화 작품을 달력 소재로 많이 쓴다. 대구은행은 김대섭(1·2/3·4월), 정창기(5·6월/11·12월), 박성열(7·8월/9·10월) 등 지역 작가의 작품을 각각 2점씩 총 6점을 선정했다. 전체 주제는 '축제'. 지역작가의 작품을 선보이기는 지역 유통업체도 마찬가지. 대구백화점은 김영대씨의 'together' 연작 12점을 담았다. 이국적인 형과 색의 집 지붕이 가득 모여있는 그림이 동화를 들려주는 듯한 작품들이다. 동아백화점은 '12人 12色 스페셜 컬렉션'을 주제로 잡았다. 작가 12인의 작품을 각각의 달에 맞는 그림으로 가득 채웠다. 나무와 꽃, 과일 등이 주를 차지한다.

전통적으로 사진을 실어온 금복주는 내년 달력에도 사진이 등장한다. 업소용에는 인물이, 가정용·사무실용에는 독도 사진이 담겼다. 지난 2005년부터 한예슬, 이보영, 이수경을 전속모델로 삼아 달력에 담았던 금복주는 내년 달력에는 새로 전속계약을 맺은 손담비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섹시하면서도 세련된 이미지'의 사진이 애주가들의 눈길을 끌 것 같다. 사무실용 달력에는 올해 들어 관심이 부쩍 늘어난 독도의 사계 사진 12장이 독도에 관한 토막상식과 함께 수록됐다.

◆회사마다 개성 담아내

기업이 제작하는 달력은 회사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만큼 소재 선택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이들 중에는 VIP용 달력을 따로 제작하는 곳도 많다. 최근 다양한 명화를 담아 온 삼성그룹이나 신세계백화점, 롯데백화점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삼성은 내년 달력에 미국의 현대 화가 엘즈워스 켈리의 작품을 소개한다. 신세계는 올해 프랑스 화가 장 뒤비페의 작품을 골랐다. 롯데백화점은 프랑스 출신의 야수파 화가 라울 뒤피의 작품을 담았다. 롯데는 올해 프랑스적인 색채로 표현주의를 펼친 독일 화가 아우구스트 마케의 작품을 선보였다.

SK는 내년 벽걸이형과 도자기형 2종의 달력을 VIP용으로 별도 제작했다. 벽걸이형에는 한국 서예 2000년을 주제로 선정한 작품을 실었다. 김생(5월), 탄연(7월), 김정희(8월) 등의 서예 작품과 민족의 정통성을 느낄 수 있는 광개토대왕비 비문이나 보물급 작품을 담았다. 10월에는 석가 일대기를 담은 월인석보(月印釋譜·보물 745호)를 담았다. 송시열(1월)과 이황(3월), 오세창(12월) 등이 남긴 가슴에 새겨야 할 마음가짐까지 담았다. 도자기형은 술병이나 물병으로 사용됐던 조선시대 백자 장군병에 달력을 넣은 것이다. 백자의 아취와 달력의 실용성을 함께 살렸다. 만화가 고우영 화백의 삼국지에 나오는 주인공을 소재로 독특한 레이아웃을 한 문학캘린더와 한정식 작가의 사진작품을 소재로 삼은 일반캘린더도 제작했다.

◆달력 제작의 새로운 경향

달력이 단순히 '공짜로 나눠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개성적인 달력을 만들 수도 있다. 한국후지필름의 인화전문점 포토이즈에서는 직접 찍은 사진으로 2009년 달력을 제작해준다. 엘지데이콤은 아이모리(www.imory.co.kr) 사이트 '2009년 맞춤형 포토달력 존'에서 사용자가 직접 달력을 디자인할 수 있는 맞춤 달력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탁상형·벽걸이형·족자형 등 60여가지 모양과 종이와 아크릴 등 다양한 재질로 세상에 하나뿐인 달력을 만들 수 있다.

달력으로 불우이웃 돕기에도 동참할 수 있다. MBC TV '무한도전' 멤버들이 올 초부터 준비했다는 '2009 무한도전 달력'은 오늘(6일)부터 판매에 들어갔다. 판매 예고 공지 직후 이미 화제가 된 무한도전 달력의 수익금은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쓰일 예정. 휴대전화를 활용한 모바일 소액기부 서비스도 있다. KTF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1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3개월 동안 '쇼 위젯 사랑나눔 캠페인-휴대폰에 사랑의 열매를 키우세요'를 진행 중이다. 위젯서비스를 통해 일정금액(일반 100원·시계달력 300원·메모장 500원)이 책정된 '사랑의 열매' 미니(이미지)를 휴대전화 대기화면에 내려받으면 구매금액 전액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하는 방식이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달력에 관해 궁금한 것

▷달력제작 과정: 달력 제작은 일찌감치 시작된다. 대부분 12월 배포를 예정으로 늦어도 11월 중순까지는 주문을 해야 제때 나눠줄 수 있다. 대구백화점도 9월 추석 전후로 일찌감치 기획을 시작했다. 다수의 기획안을 내서 이를 검토한 뒤 10월 시제품을 만들었다. 이를 보면서 최종 디자인을 선정했다. 11월 초에 디자인 작업을 끝낸 뒤 인쇄를 의뢰해 11월 중순 이후 배포를 시작했다.

▷명화달력: 세계적인 명화를 달력에 처음 실은 것은 속옷 회사인 비비안으로 알려져 있다. 비비안은 1967년부터 1996년까지 30년 동안 390개의 명화를 소개했다. 당시 여기저기에서 이를 구해달라고 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달력 속 사진·그림의 저작권: 달력에 들어가는 사진이나 그림을 사용하는 대가로 저작권자에게 사용료가 지급된다. 한미FTA(자유무역협정)가 발효되면 50년인 저작권 보호기간은 70년으로 늘어난다. 전문제작업체의 경우 일찌감치 입찰로 필요한 작품을 확보해 시제품 제작에 들어간다.

▷달력 모델: 요즘 달력에선 유명 탤런트나 영화 스타를 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1970, 80년대 달력에는 스타 모델이 많았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자 스타들은 1월달 모델이 되기 위해 치열한 물밑대결도 벌였다. 주류회사에서는 무명의 여성모델을 기용해 반라로 '섹시코드'를 살리기도 했다.

조문호기자

♠ 어? 빨간날이 없네…앗! 13년간의 저주

2009년 추석 연휴는 10월 2~4일이다. 이 가운데 3·4일이 토·일요일이다. 추석 연휴에 주말이 끼어 3일짜리 연휴가 되는 현상은 앞으로 2018년까지 계속 되풀이된다. 2006년부터 생긴 이 같은 현상을 빗대어 '13년 명절의 저주'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실제로 ▷2010년 설(2월 13~15일) ▷2012년 추석(9월 29일~10월 1일) ▷2015년 추석(9월 26~28일)이 토·일·월요일이다. 이외에도 일·월·화로 이어지는 짧은 연휴 기간도 많다. 이로 인해 직접 귀성이나 양가 귀성을 당연시하던 경향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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