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를 이루다]수제화 제작 33년 김오철 씨

입력 2008-12-04 12:19:41

향촌동 수제화 골목, 2008년 동성로는 연말 분위기로 한층 들떠있지만 귀퉁이를 돌아 수제화 공장에 들어서면 갑자기 화면이 정지된 듯하다. 확 끼쳐오는 본드와 가죽냄새 사이에서 일일이 손으로 가죽을 재단하고 본드를 발라 밑창을 만드는 기술자들의 모습은 1970년대 공장 풍경과 다르지 않다.

흔히들 '신발 만드는 일은 비행기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사람들의 발 모양이 그만큼 천태만상이기 때문이다. 아미콜렉션 김오철(46) 대표는 13살부터 신발 만드는 일에만 매달려 33년 외길 인생을 걷고 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사촌 형으로부터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당시엔 본드가 있었나요. 미제 깡통에 신나를 붓고 생고무를 잘라넣어 직접 풀을 만들어썼죠. 가죽도 손으로 다 깎아야 했어요."

당시만 해도 기술전수는 도제식으로 이뤄져 12시간 작업시간 중 3,4시간은 선배에게 맞아가며 기술을 배웠다. 단 한 대 있는 버스가 끊기면 비산동 공장에서 평리동까지 걸어가야 했다. "13살 먹은 어린 아이가 도시락 가방 들고 한밤중 공동묘지를 지나다니던 그 심정이 어땠겠어요?" 당시 월급이 400원. 그래도 그에겐 '최고의 신발을 만들겠다'는 꿈이 있었다.

1980년대 들어서자 수제화시장도 호황을 맞았다. 1984년 밑창을 뺀 신발 껍데기 하나를 만드는 데 견습생들이 받은 돈은 160원. 기술자들이 파업하고 경기도 좋아 공임은 해마다 올랐다. 20대 초반었던 그의 한달 월급이 100만원이 넘었으니, 꽤 벌이가 좋았던 시절이었다.

그런 호황기는 1990년대까지 이어졌다. 한창 바쁠 때, 기술자들의 점심시간은 5분을 넘지 않는다. 도급제인 까닭에 일한만큼 받기 때문이다. 잠잘 틈 없이 하루종일 일만 해도 신명이 났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200여명의 기술자가 몸 담고 있는 이 골목에서, 김씨는 수제화 기술자의 마지막 세대다. 50,60대 선배들이 수두룩하고 후배라 해봤자 고작 1,2살 차이가 난다. 기술을 배우는 데 수년이 걸리는데다 돈이 되지 않아 배우려는 사람이 없는 탓이다.

"수제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일이 손으로 만들어요. 직접 디자인해 종이에 본을 뜬 후 가죽을 재단합니다. 디자인에 따라 조각조각 잘려진 조각들을 미싱사들이 박으면 바닥을 만들어 붙입니다. 바닥 하나를 만들기 위한 공정도 복잡해요. 한마디로 '예술'에 가깝습니다."

그의 공장엔 수만 개의 신발본이 쌓여있다. 한 계절에 나오는 신발디자인은 300여개, 일년이면 1천200개의 서로 다른 신발디자인을 만들어낸다는 결론이다.

신발 한 켤레를 만들기 위해선 최소 6,7명의 각 분야 전문가가 필요하다. 최고로 바쁠 때, 하루 20시간 동안 이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신발은 최대 50켤레.

하지만 요즘은 이런 바쁜 날들이 차츰 줄어들고 있다. 수제화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는 값싼 중국산 때문에 휘청이더니 이젠 불황 때문에 골목을 찾는 이들이 뜸하다. 재료비는 최소 30% 이상 올랐다. 수제화 기술자들도 하나 둘 골목을 떠나고 있다.

"백화점에선 한 켤레 20만원이 훌쩍 넘어도 당연하게 사면서, 여기선 8,9만원이 비싸다고들 하세요. 재료비와 인건비를 빼고 나면 말 그대로 입에 풀칠하기도 빠듯한데 말이죠."

그는 그래도 최고의 국산 재료를 고집한다. 그것이 30년 이상 외길을 걸어온 '장인'의 자존심이다.

신발 만들면서 선배들은'돈은 안 되고 골병만 들었다'고들 한다. 본드·가죽냄새에 평생에 찌들어 있는데다 좁은 작업장에서 같은 자세로 일해 등과 허리는 구부정하게 굽었다. 먼지 때문에 기관지염도 달고 산다. 그래도 그의 신발 사랑은 어쩔 수 없다. "길을 걸을 때, 운전하다가 횡단보도 앞에 설 때 사람들 신발만 봐요. 자기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은 사람을 보면 참 안타깝죠."

수제화 기술자의 마지막 세대인 그가 손을 놓게될 10년 후면 아마 수제화 명맥이 끊기지 않을까 걱정이다. 수제화는 꼭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 평발에서부터 발이 불편한 장애인, 기형적인 발을 가진 이들에게 맞춤신발은 필수다.

"혼을 담아 처음부터 끝까지 손으로 만드는 수제화가 명품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꼭 오리라 믿어요. 외국산 브랜드에만 장인이 있나요. 여기 수제화 골목에도 30,40년된 장인들이 수두룩한 걸요. 나만의 디자인으로 내 신발을 인정해주는 사람들을 위한 신발을 만드는 것이 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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