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 대구 서구 평리동의 한 고물상. 900㎡ 남짓한 공터에는 종이 박스, 구부러진 알루미늄, 시멘트 덩어리가 붙은 철근 등 각종 고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 사이로 백발이 성성한 김모(71·여)씨가 짐이 가득 실린 손수레를 힘겹게 끌고 들어섰다. 수레 안에는 신문지와 빈 종이 박스, 하얀 철제 대야 등 고물이 차곡차곡 차 있었다. 그러나 고물상 주인은 할머니를 보고 손사래부터 쳤다. 있는 고물도 팔리지 않는데 더 이상 고물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할머니는 "벌써 두 군데 고물상에서 퇴짜를 맞았다"며 간곡히 부탁했고, 고개를 갸우뚱하던 업주는 계산기를 꺼내 두드렸다. '2천300원.' "할머니, 더 쳐 드리고 싶어도 워낙 고물값이 떨어져 많이 드릴 수가 없어요." 업주도 할머니가 딱했는지 음료수 한 병을 건넸다. 김씨는 "오전 1시부터 힘겹게 모았는데…. 아픈 허리에 붙일 파스 몇 장 사면 딱 맞을 것 같다"며 빈수레를 끌고 돌아섰다.
고철, 폐지를 모아 생계를 잇던 노인들이 폐자재 가격 폭락 여파로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고물을 내다 판 돈으로 손자 용돈이나 생계에 보탬이 될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하루종일 고물을 모아도 2천~3천원을 벌기가 힘들다.
대구지역 재활용업계에 따르면 폐지 등 종이류의 ㎏당 가격은 올해 상반기 170∼200원에서 40원대로 뚝 떨어졌다. 고철류 가격도 700원에서 60원대로 폭락했고 플라스틱류와 알루미늄, 구리 등 대부분 폐자재 가격도 20∼70%가량 떨어진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유가 하락과 국내 경기침체로 폐자재를 이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제철업체, 제지업체 등이 생산량을 줄이면서 가격이 폭락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 고물상에는 더 이상 폐자재 구입을 꺼리고 있다.
IMF 당시 사업에 실패하고 고물 수집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김모(67)씨는 유일한 낙이던 담배와 술을 끊었다. 온 종일 고물을 주워다 팔지만 예전 수입의 4분의 1에도 못 미치기 때문이다. 김씨가 3일 전날부터 모은 고물을 팔아 받은 돈은 고작 2천700원. 김씨는 "요즘처럼 감기가 원망스러울 때가 없어. 하루 종일 일해 번 몇 천원을 고스란히 약값으로 써야 한다"고 푸념했다.
달서구 송현동의 한 고물상에서 만난 이모(53)씨도 4일 동안 노모와 함께 새벽같이 일어나 모은 고물 165kg을 1t 트럭에 싣고 왔지만 수중에 쥔 돈은 8천250원이었다. 이씨는 "고물값이 너무 내려 요즘은 차 기름값도 대기 힘들다"며 "앞으로 살길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서구 평리동에서 고물상을 운영하는 이두혁(55) 사장은 "7, 8월에 고철가격이 ㎏당 600∼700원대를 호가했지만 지금은 ㎏당 70원도 받지 못한다"며 "고물을 주워오는 노인들도 힘들지만 우리도 사정이 최악이라 안타깝다"고 말했다.
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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