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맘때 일본에서 한 해를 상징하는 한자로 '위(僞)'가 뽑힌 적이 있다. 僞善(위선)'僞裝(위장)'僞計(위계)'僞書(위서) 등 좋지 않은 어감으로 쓰이는 글자다. 한마디로 말해 거짓이다. 작년 일본에선 유달리 불량식품 파동이 끊이지 않았다. 창립 300년 된 제과업체 아카후쿠(赤福), 명문 제과업체 후지야(不二家), 아키타현 특산 닭고기인 히나이도리 가공업체, 전통 일본요리점 센바깃초(船場吉兆) 등 내로라하는 수많은 업체들이 손님을 속여오다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원료를 속이고 유통기한이 경과한 재료를 사용하거나 먹다 남은 음식을 다시 손님에게 내놓다 적발된 것이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중국산 장어를 일본산으로 속여 팔거나 곰팡이에 잔류농약까지 검출된 공업용 쌀을 수입해 식용으로 유통시켜 큰 사회문제가 됐다. 재고 처리에 눈이 먼 업자들 짓이다. 일본만 그럴까. 미국산 쇠고기 파동에다 멜라민 파동에 이르기까지 우리 소비자의 불신도 극에 달했다. 이 와중에 최근 미국산 쇠고기를 한우에 섞어 팔거나 호주산이라고 속여 판 식당들이 대거 적발됐다. 장사치들의 소비자 속이기가 어디 이뿐일까.
한때 국내 기업들이 앞다퉈 '고객 감동' '감성 경영'이라는 말을 유행시켰다. 고객의 마음을 얻겠다는 것이다. 늘어나는 소비자 구매력과 안목, 소비자의식 때문에 고객의 환심을 사려면 그럴듯한 슬로건이 필요했다.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감성까지 마케팅 전략으로 끌어댄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감동은 없고 상술만 있었다. 국내 자동차 제조사 모임인 한국자동차공업협회가 최근 판매 진작책을 정부에 건의하면서 새 차값 인하에 절대적인 개별소비세 폐지나 인하를 의도적으로 외면했다는 보도다. 소비세를 없애면 당장 차 판매에 차질이 생기니 꼼수를 쓴 것이다. 고객 득 될 일은 무시하고 제 배만 불리겠다는 심보다. 이러니 고객감동은 허울이라는 게다.
오늘은 기념일로 제정된 이후 열세 번째 맞는 소비자의 날이다. 옛말에 어려울 때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금융위기 속에서 석 자나 빠진 제 코만 생각하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럴 때 고객을 감동시키려는 기업은 왜 나오지 않을까.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한결같이 소비자를 신의로 대한다면 굳이 소비자의 날이 필요할까 싶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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