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걸 왜 시작" 초장부터 삐걱
앞으로 5년간 8천250억원의 막대한 예산이 투입될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 사업이 공정성과 객관성, 균형감 상실에다, 철학의 부재까지 노출하면서 첫 단계에서부터 '시작하지 말아야 할 실패한 정책'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공계 분야와 상위권 대학들이 '싹쓸이'하다시피 한 심사결과를 '수월성'의 원칙을 강조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WCU 사업의 근본 취지와 그동안 지원대상 선정과정에서 불거진 문제들을 종합해 볼 때 정부 정책 집행의 난맥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쏟아지는 이의제기= 지난달 9일 WCU 사업에 대한 중간평가 발표 이후 16개 대학에서 39건의 이의신청 및 정보공개 신청이 접수됐다. 과학재단이 진행한 단일 연구비 지원 과제심사에서 이런 사례는 처음이었다. 특히 유형 1에서 전국단위 사업은 46.3%의 선정률을 보인 데 비해 지방단위 사업은 25개 신청 과제 중 16.0%인 4개만이 1차 심사를 통과하면서 지방대학들의 반발이 잇따랐다.
최종 심사결과, 모두 102개(1, 2, 3 유형) 과제가 신청된 WCU 지방단위에서 오직 7개만 선정됐을 뿐이다. 이 때문에 지방단위로 배정한 예산 400억원 중 190억원이나 남게 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일어났다. 지역대학에서 '지방단위'로 신청한 사업이 과학재단의 심사 과정에서 전국단위로 바뀌고, 게다가 신청분야와 사업책임자의 전공·소속까지 변경해 버린 것이다. 교과부와 과학재단은 아직까지 이 문제에 대해 이해할만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논문평가 과정도 엉터리였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성균관대, 서강대, 건국대 등의 4개 팀이 논문 중복게재와 자기표절 의혹을 받은 것. 교과부는 최종심사 과정에서 서강대팀을 탈락시켰지만, 신뢰를 돌이키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철학부재, 학문의 형평성과 균형 파괴!= WCU사업 심사결과는 이공계와 상위권 대학 '집중지원'으로 요약할 수 있다. 서울대 317억원, 한국과학기술원 164억원, 포스텍 146억원, 성균관대 116억원 등 몇몇 대학에 지원금이 몰려 있고, 지방대의 경우는 선정됐더라도 지원액이 10억원 미만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또 주목해야 할 것은 전공의 경우 인문사회 분야뿐만 아니라, 이공계 중에서 토목, 건축, 컴퓨터 등 일부 분야 역시 배제됐다는 점이다. 결국 지방대학과 인문사회계, 이공계 몇몇 분야는 뭔지도 잘 모를 이유 때문에 차별 아닌 '차별'을 받은 셈이다.
이와 관련, 일부 전문가들은 "특정 분야는 아예 소외되고 특정 분야로만 지원이 집중된 이번 WCU사업 선정결과는 평가방법이 WCU의 근본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WCU사업 공모 자료를 보면, 국가·사회발전과 학문 성장을 선도할 수 있는 새로운 전공분야의 융·복합 예시로 ▷경영+산업 ▷디자인·예술+공학 ▷수학+전산+경영 ▷생물+물리+철학 ▷인문학+자연과학 ▷사회과학+자연과학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실제 평가과정에서는 논문실적 점수를 과다하게 반영함으로써 WCU사업의 취지에 맞춰 단과대학을 넘어선 학문 간 이종융합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려는 사업계획은 낮은 평가를 받았지만, 학과 내 또는 단과대학 내의 동종융합적 사업계획은 높은 점수를 얻었다는 것.
또 불안정한 조직에 국가적 중요 사업의 평가를 전적으로 맡긴 것도 잘못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WCU사업의 심사를 맡은 한국과학재단은 조만간 한국학술진흥재단과 통·폐합을 앞두고 있어 신분이 불안해진 구성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문제될 수 있음에도 교과부의 지도·감독이 소홀했던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WCU사업은 김도연 전 교과부 장관과 이주호 전 대통령 수석비서관이 주도해 기획했는데, 개각으로 두 사람이 모두 물러나면서 처음 취지와 철학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마구잡이로 정책이 집행됨으로써 엄청난 부작용을 낳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기획탐사팀=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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