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했다.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햇볕정책이 북한의 핵실험을 초래했을 뿐이라며 햇볕정책의 중단을 요구했다. 햇볕정책의 원조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핵실험은 미국정책의 실패 때문이라며 햇볕정책을 옹호하고 나섰다. 한국의 정책 때문이냐 미국의 정책 때문이냐를 따지는 속에서 정작 핵실험을 단행한 북한의 책임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북한이 마침내 개성관광을 중단하고 개성공단의 폐쇄를 위협하고 있다. 남북한의 경제규모를 볼 때 그로 인한 손해는 북한이 더 클 텐데 도대체 뭘 바라고 저러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일시적인 손실만이 아니다. 시장의 신뢰를 상실하여 향후 어떠한 프로젝트에도 투자자를 찾기 어렵게 되는 장기적 손실이 더 클 것이 분명한데 말이다.
필자보다 북한을 잘 아는 한 선배교수가 답을 주었다. 북한은 시장이 주는 경제적 이득보다 그로 인한 체제 이완을 더 우려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장의 신뢰 상실과 같은 경제적 논리는 이해하지도 못할 것이라고 했다. 실로 북한은 자생적으로 나타나는 시장을 제한하는 조치를 지속적으로 취해왔다. 식량의 배급을 사실상 담당하고 있는 시장이 위축돼 식량난이 악화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지난달 27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난하고 야당의 공조를 촉구했다. 주말인 30일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등 야 3당이 '남북관계 위기타개를 위한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대북정책의 전면적 전환을 촉구했다. 여당은 즉각 '종북주의적 태도'라며 비난하여 여야갈등을 예고했다.
대북정책을 둘러싼 여야 대립이 격화되면 새해 예산안 심의 등 온갖 정책현안에서 차질이 예상된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남남갈등'이 재연될까 우려된다. 북한의 대남강경정책의 의도가 남한사회의 분열이라면, 또 그를 통한 정부에 대한 압박이라면 훌륭하게 성공하고 있는 셈이다.
세계는 눈이 핑핑 돌 정도로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이 8년 만에 승리하여 사상 최초로 흑인대통령이 집권할 예정이다. 태국에서는 정치적 갈등이 폭력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인도에서는 170명이 피살되고 수백 명이 부상한 테러가 발생하고 그것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 파키스탄과의 군사적, 외교적 갈등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와 같은 국제정치적 사건은 무엇보다 80년 전 대공황 이후 최대라는 금융위기, 경제위기의 와중에 일어나고 있다.
금융위기 속에서 갈 곳을 몰라 전전긍긍하는 자본이 태국이나 인도를 회피할 것은 자명하다.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면 우리나라도 기피국의 하나로 등장할 우려도 없지 않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나라 경제가 입을 타격은 북한이 개성관광의 중단 등으로 입을 피해보다 훨씬 크게 될 것이다. 설마 하지만, 만일 북한이 여기까지 내다보고 강경정책을 펼쳤다면 북한이 경제논리를 이해 못 한다는 생각은 재고돼야 하지 않을까?
사실 정치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권력의 쟁취와 유지를 목표로 하는 정치는 경제, 외교, 그 모든 것에 우선한다. 권력유지에 급급하여 식량난을 외면하는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나 정치투쟁에 골몰하여 경제위기를 외면하는 이 나라의 정치인이나 그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민주주의가 독재나 전제정치보다 나은 것은 바로 그것에 대한 국민의 통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독재자 중에도 뛰어난 지도자가 있고 전제군주 중에도 성군이 있었지만 그것은 예외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 중에도 무능한 인물이 있지만 그것도 예외다.
전제조건이 있다. 국가정체성에 대한 국민의 합의와 그것을 정치적, 정책적 담론으로 구체화시킬 수 있는 정치철학의 존재다. 우리나라는 분단과 전쟁 속에서 탄생했지만 민주화와 경제성장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면서 실질에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의 국가정체성을 다져왔다. 그러나 정치현실을 지도하는 정치철학이 없다. 명색이 정치학자인 필자가 밤잠 설치며 괴로워하는 부분이다.
김태현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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