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존엄사 인정 vs 생명 경시 가속화
김모(79·여)씨는 지난달 폐질환으로 치료를 받던 중 뇌사 상태에 빠져 인공호흡기 신세를 지고 있다. 김씨는 한 달이 지났지만 다시 의식을 찾을 가능성은 보이지 않아 무작정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하루하루 목숨만 연장하고 있다. 그러나 가족들은 차라리 편안하게 돌아가시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불효'와 '현실'의 벽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한숨만 쉬고 있다.
'존엄사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법원이 사상 처음으로 '인간답게 죽게 해 달라'고 요구한 가족들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 이번 판결에 대해 학계와 의료계는 "인간은 자연스럽게 죽을 권리가 있다"며 긍정적 입장을 나타내고 있지만 종교계는 "생명경시 사상을 가속화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서울 서부지법 민사12부(부장판사 김천수)는 28일 폐 조직 검사를 받던 중 출혈로 인한 뇌손상을 입어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김모(75·여)씨의 가족들이 낸 '무의미한 연명 치료 중단 이행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진료기관 등의 기록 등을 고려할 때 회복 가능성이 거의 없고, 환자가 평소 존엄하게 죽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점 등을 근거로 환자 가족의 치료 중단 요구를 인정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식물인간 상태나 말기 환자 등 비슷한 처지에 있는 환자 및 가족들의 존엄사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실제 존엄사 논란은 대형 종합병원마다 적잖게 벌어지는 게 현실이다. 지역의 큰 병원들에는 환자의 존엄사를 요구하거나 문의하는 경우가 한달에 1~3건 정도 된다.
대구파티마병원 관계자는 "식물인간 판정이 났을 때 그냥 편안히 돌아가실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구하는 환자 가족들이 많다"며 "그러나 법적으로 문제가 되기 때문에 인공호흡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하면 대부분 어쩔 수 없이 그냥 받아들인다"고 했다.
또 다른 종합병원 관계자는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며 살고 있는 환자 가족 중 존엄사를 부탁하거나 문의하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보수적인 지역 분위기 때문에 환자가 사망할 때까지 그냥 기다리는 게 보통"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이번 판결을 두고 존엄사에 대해 확대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분석이 많다. 임규옥 의료전문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환자 생전의 종교관, 생활태도, 비슷한 사례에 대한 평소의 반응 등을 추정해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한 것인 만큼 존엄사 자체를 인정한 게 결코 아니다"며 "이번처럼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일반화할 수 없어 유사한 소송이 잇따를지 예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 존엄사(尊嚴死)와 안락사(安樂死)=존엄사는 품위 있는 죽음을 말하는데 최선의 의학적인 치료를 다했음에도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이 임박했을 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함으로써 질병에 의해 자연적인 죽음에 이르게 하는 말이다. 안락사는 질병에 의한 자연적인 죽음보다 훨씬 이전에 생명을 마감시키며 인위적인 행위에 의한 죽음을 의미한다. 존엄사와는 다소 의미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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