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도심 재창조] ⑦골목이 경쟁력이다①
도심재창조 시리즈에서는 지금까지 6회에 걸쳐 ▷대구 도심의 모습 ▷보행권 ▷주거환경 ▷역사·문화 ▷녹지 ▷디자인을 주제로 대구의 현황과 세계 도시들의 진행 방향, 대구의 지향점을 큰 틀에서 짚었다. 이번 주부터는 대구 도심을 재창조하기 위한 개별 소재들을 파고들어 현상을 분석하고 주민들과 전문가, 행정당국의 입장을 들어 구체적인 실현방안까지 제안하는 형태로 지면을 구성한다.
대구를 세계와 겨룰 수 있는 도시로 만들기 위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 무엇인지 전문가들을 만날 때마다 질문했다. 도시 전체의 역량을 집중시켜 대구만의 특성으로 키울 만큼 경쟁력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려 달라고 했다. 도시계획 전문가에서부터 건축가, 디자이너, 인문학자, 예술가에 이르기까지 취재한 결과는 다소 허탈했다. 골목이라니.
◆대구 골목은 대구에만 있다
"도쿄의 록본기힐즈, 오사카의 난바파크, 후쿠오카의 캐널시티를 떠올려 보세요. 모두가 도심 복합개발의 모범적인 사례로 꼽히죠. 그러나 처음 갈 때와 두 번째, 세 번째 갈 때 느끼는 감흥이 다를 바 없다면 도시의 얼굴이라고 하긴 힘들죠." 일본에서 근대건축을 전공한 김천과학대 김주야 교수는 오히려 일본 도시들의 골목 마케팅에 주목하라고 당부했다.
실제로 지난달 기자가 찾아간 일본의 교토와 가나자와에서는 전통 골목을 정비해 관광객들이 북적이는 명소로 만든 사례를 여럿 볼 수 있었다. 예컨대 17세기 최고의 유흥가였던 가나자와의 히가시차야 골목은 몇 년 전 대대적으로 정비를 한 후 관광객 천지가 됐다. 전통 요정을 경험하는 것은 물론 가나자와의 대표적 전통 공예인 금박공예와 직물염색도 손쉽게 체험할 수 있다. 외지인들에게는 특이한 골목에서 겪은 흥미로운 체험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 법. 다시 찾아오게 만드는 것이다.
대구시와 중구청이 추진하는 근대골목 경관조성과 동성로 공공디자인개선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경북대 건축학과 이정호 교수는 "대구 도심 골목은 아직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자산 가치가 대단하다"며 "당장 편하자고 골목을 헐고 길을 넓힌다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도시가 되고 말 것"이라고 했다.
대구 도심은 전문가들 사이에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골목이 원형 그대로 보존된 드문 지역으로 꼽힌다. 일제 강점기를 전후해 대구 도심이 형성된 이후 도시계획이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일본 교토공예섬유대 건축디자인학부 이시다 준이치로 교수는 "근대 건축 연구를 위해 대구와 서울에 몇 차례 다녀왔는데 특히 대구 골목이 기억에 남는다"며 "대구에서만 볼 수 있는 세계 유일의 형태"라고 말했다.
◆정비하고 연결해야 살아난다
골목은 이중적이다. 과거의 시간 위에 현재의 삶이 있다. 인간적이지만 불편하다. 역사의 숨결을 지키고 싶은 마음과 개발의 욕구가 교차한다. 큰 길이 전면에서 화려하게 빛을 낸다면 골목은 이면에서 조용하게 공동체를 지킨다. 이런 이중성이 도심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걸 가로막고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을 엇갈리게 만든다. 한 가지 분명한 건 한 번 헐리면 영원히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바닥을 친 건축경기가 되살아날 줄 모르고, 대규모 복합 개발의 가능성도 몇 년 내로는 기대하기 힘든 대구 도심이라면 현재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렇다면 대구 골목은 어떻게 해야 경쟁력을 키울 수 있을까.
우선은 1천개가 넘는 도심 골목들을 정비하는 일이 시급하다. 편하고 안전하게 걸어서 다닐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대구시와 중구청은 지금까지 약전골목이나 야시골목 같은 특화된 거리에 예산을 집중시키는 방식을 택해왔지만, 도무지 성과가 보이지 않는 투자는 차라리 삼가야 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근대골목과 동성로 공공디자인 개선 사업같이 제대로 된 방향을 잡았다면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영남대 건축학부 도현학 교수는 "몇몇 골목들이 제각기 발전하면서 전체적으로는 연결이 끊겨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전체적인 골목 정비 계획을 세우되 도심을 순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도시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도심에 30분~1시간 거리의 골목길 도보 코스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도심 각각의 골목에 다양한 테마를 주고 이를 연결시키면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함께 살아난다는 사실은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이미 입증됐다. 도 교수는 "이제는 산발적인 사업보다 도심 골목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라고 했다.
◆주민이 참여해야 성공한다
대구 도심 골목이 아무리 매력적이라고 해도 그 속에서 생활하는 주민들 입장에서는 생각이 각자 다를 수밖에 없다. 토지나 건축물을 소유한 사람의 마음과 세들어 살고 있는 사람의 마음만 해도 천양지차다. 이런 차이들을 어떻게 조정해서 최선의 결론으로 이끌어내느냐가 도심 재창조의 성공을 판가름한다. 도심 재창조는 단순히 경제적 재생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게 아니라 주민들의 삶의 질을 되살리고, 공동체를 다시 일으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YMCA 김경민 사무총장 대행은 "공청회 한두 번 여는 정도로 주민 의견을 반영했다고 보는 건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을 안고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기획 단계에서부터 설계와 시공, 사후 관리에 이르기까지 주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도심 프로젝트를 실패로 모는 대표적 원인인 사후 관리 문제는 반드시 주민들의 손에 맡겨야 한다는 것.
골목 살리기의 모범적인 형태로 2006년부터 붐이 일고 있는 공공미술 역시 주민들의 삶과 동떨어지면서 실패로 끝난 경우가 적잖다. 그림을 그리고 조형물을 설치해 낙후된 골목에 활기를 불어넣는다고 하지만 사후 관리가 되지 않으면 금세 너덜너덜해져 오히려 흉물이 되고 만다.
이런 측면에서 동성로 공공디자인개선사업단이 모색하고 있는 '동성로 큐레이터' 제도는 눈여겨볼 만하다. 이정호 교수는 "동성로를 활성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시도하려면 상인들만의 기획으로는 연속성이 없고 일관성도 떨어진다"며 "상시적으로 테마가 있는 축제를 기획할 수 있도록 전문 큐레이터를 두고 행정당국과 상인들,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운영위원회를 만들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특별취재팀 김재경·서상현기자 사진·이채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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